러빨러가 되는 과정
어떤 개발자가 있다.
그는 자기 이름으로 공개한 앱이 없다.
직접 기획하고 완성한 제품도 없다.
회사에서는 남이 만든 제품을 유지보수하고, 이미 존재하는 웹서비스를 고친다.
유지보수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자기 결과물은 보여주지 못하면서, 다른 개발자의 실력과 자격은 쉽게 판정한다는 점이다.
무엇을 만들었느냐고 물으면 내놓을 프로젝트가 없다.
어떤 기술을 검증했느냐고 물으면 공개할 코드가 없다.
그런데도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언어와 도구의 우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단정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러스트를 발견한다.
정확히는 러스트로 무언가를 만든 것이 아니다.
소유권, 메모리 안전성, 무비용 추상화, 미래의 시스템 언어, 가장 사랑받는 언어 같은 홍보 문구를 접한 것이다.
C나 C++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본 경험도 없다.
러스트로 완성한 앱도 없다.
공개한 러스트 라이브러리도 없고, 검증 가능한 벤치마크도 없다.
하지만 러스트가 기존 언어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강렬하게 다가온다.
현실에서 자기 실력을 증명하려면 결과물이 필요하다.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하고, 실패를 감수해야 하고, 자기 이름을 걸고 공개해야 한다.
반면 위대하다고 선전되는 기술의 편에 서는 일은 쉽다.
러스트는 위대한 언어다.
나는 러스트를 지지한다.
그러므로 나는 위대한 집단에 속한다.
이런 자아 동일시가 시작된다.
직접 만든 성과는 없어도, 우월하다고 믿는 기술의 편에 서는 것만으로 자신이 특별해진 듯한 감각을 얻는다.
현실에서는 남의 제품을 고치지만, 머릿속에서는 미래 기술을 먼저 알아본 엘리트 개발자가 된다.
자기 이름으로 공개한 러스트 앱은 없지만 러스트의 미래는 확신한다.
C와 C++로 제품을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그 언어들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한다.
검증 가능한 결과물은 없지만, 러스트를 선택하지 않은 개발자들의 지능과 자격은 판정한다.
자기 이름은 걸지 못하면서 러스트의 이름은 크게 외친다.
자기 결과물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러스트를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경험과 증명을 요구한다.
여기서 러스트는 프로그래밍 도구가 아니라 자아를 떠받치는 외부 장치가 된다.
러스트의 성공은 자신의 성공이 된다.
러스트의 명성은 자신의 명예가 된다.
러스트의 우월성은 자신의 우월성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 러스트의 단점을 지적하면 기술적으로 반박하지 않는다.
러스트에 대한 비판을 언어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러스트를 못해서 비판한다.”
“저능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잘나가는 집단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
“직접 사용해 보지도 않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 물어보면 러스트로 만든 앱은 없다.
공개한 라이브러리도 없다.
검증 가능한 벤치마크도 없다.
실제 프로젝트에서 얻은 경험도 없다.
러스트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러스트의 위신을 소비한다.
코드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월감을 생산한다.
러스트 사용자는 러스트를 도구로 쓴다.
필요하면 선택하고, 맞지 않으면 다른 언어를 쓴다.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고, 결과물로 판단한다.
러빨러는 다르다.
러스트가 반드시 위대해야 한다.
러스트에 단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러스트를 비판하는 사람은 틀린 정도가 아니라 열등해야 한다.
왜냐하면 러스트의 우월성이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 둔 자신의 가상적 우월감도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러스트 사용자와 러빨러의 차이는 간단하다.
러스트 사용자는 러스트로 무언가를 만든다.
러빨러는 러스트를 이용해 자신이 대단하다는 환상을 만든다.
사용자는 언어를 도구로 쓰고,
빠돌이는 언어를 신분증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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