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뚜껑은 왜 둥글게 만들어 졌는가?'
일단 이런 질문은 긴장을 풀어주는 질문이 아니다.
익숙하고 잘 아는 내용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긴장을 풀어주는 질문이라 하겠다.
질문이 있다는 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정말 그 해답에 대해서 궁금하거나
또는 그 질문을 통해서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질문을 통해서 어떤 대답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그 질문자가 그 질문의 의도, 배경에 대해서 뚜렷한 견해나 이해를 선행해야 한다.
또한 질문을 통해서 어떤 대답을 기대한다는 것은
일정한 범주안에 속하는 해답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그 자체로 이미 그 질문이 그 질문자에게
일종의 상식처럼 틀이 굳어져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맨홀 뚜껑은 왜 둥글게 만들어 졌는가?'
맨홀 뚜껑이 둥글게 만들어져 있다.
누군가 둥글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둥글게 만든 그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면 된다.
그 사람의 대답이 'just for fun' 이 아니라면,
이 질문에 대한 정형화되고 기대되는 해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해답은 논리적인 추론에 의해서 접근되어진다.
하지만 그 대답에 접근하는 시간을 짧게 설정하거나 초조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할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애초 질문자의 질문 의도 자체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자는 단순히 논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느냐를 궁금해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랬을 수도 있고.
(논리적인 추론이 필요하다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경우엔 오히려 논리적인 추론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 논리적인 추론의 과정에 어떤 생각, 어떤 경험, 어떤 가치관들이 적용 되어지는가 하는 점이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상대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어차피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럴거 같다.
그러나 같은 질문이라고 하더라도, 질문자가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바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질문자의 인풋(질문)에 대해서 어차피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므로
더 아웃풋(해답)을 빨리 내놓는 '속도' 를 기대한 것이라면, 그것이 곧 추구했던 가치일 것이다.
(이것은 틀로 굳어진 '족보' 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그것은 대한민국 교육의 한계로 지적하고 싶다.)
컴퓨터의 CPU가 돌아가듯 논리적인 추론이 초고속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을 원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이는 인풋이 있을 때, 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든 말든 아웃풋만 빨리 내놓으면 된다는 것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반면 인풋에 대한 그 사람의 추론 과정을 통하여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기대한 것이라면,
역시 그것이 곧 추구했던 가치일 것이다.
어떤 한 인간이 살아온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아보길 원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이는 인풋이 있을 때, 아웃풋을 내놓을 때까지의 내부의 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결론은 준호맥과이어는 휴머니즘을 추구한다.
결론이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