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는 동아일보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10/08/16/201008160500034/201008160500034_2.html




IMF 충격으로 ‘고리대 공화국’ 탄생


정부 측에서 연 60%라는 높은 금리를 제시했는데도 대부업계, 정치인들은 마땅치 않아 했다. “법정이자율은 아무리 낮아도 연 60% 이상은 돼야 한다”는 주장은 차라리 애교였다. 국회의원들은 “100% 이상은 받게 해야 한다” “최저 25% 이상, 최고 75%까지 받을 수 있게 하자”는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2001년 6월 18일 재경위에서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의원의 발언이다.

“대개 60%가 적다고 생각하시면, 저는 기타수수료 있지 않습니까, 기타 이런이런 것은 법에 이자를 포함한다고 돼 있잖아요? 이자는 이자대로 명시하고 기타 어떤 명목으로 해가지고 몇 % 이상 못한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국민에게 설득력이 있지 않겠느냐,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중략) 이자 이외의 수수료도 별도로 인정해주고 대손도 처리를 인정해주면 공식적인 이자가 다 포함해서 100%가량 넘었거든요. 그것을 인정해주면 60% 전후로 해도 그것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장사가 현실적으로 감안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되는데, 어때요?”

당시 국회에는 이인기 의원 등 46명이 발의한 이자제한법안과 김문수 의원의 소개로 참여연대가 입법 청원한 이자제한법안 2개 법안이 발의됐다. 두 법안 모두 4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법정 최고금리를 정하는 것으로, 특히 참여연대 안은 과거처럼 연 25%의 최고금리를 대통령령으로 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들 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이뤄지지 않은 채 폐기됐다.

재경위를 거치면서 최고금리는 오히려 정부안보다 높은 연 90%가 거론됐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면서 연 70%로 후퇴했고, 결국 시행령으로 연 66%의 이자율이 확정됐다. 이는 한국 역사상 가장 높은 금리로 기록된다. 한국 역사에서 법정이자율 제도가 성립된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고려 경종은 이자가 원금의 3분의 1(연 33.3%)을 초과하지 못하게 했고, 조선 세종은 월 이자를 3%까지 허용하되 최대 10%를 넘지 못하도록 했으며, 영조 역시 법정이자율을 연 20%로 하되 이자를 3년 이상 받지 못하도록 해서 어떤 경우에도 이자가 원금의 60%를 초과하지 못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