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인이 뒷통수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 아니다. 옛부터 선현들은 전라도의 풍속이 사치를 즐겨하고 사람들은 간사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특히 고려 왕조의 헌법으로 통치 강령이 되었던 훈요십조에는 전라도 사람들을 경계하라는 훈시가 남아 있을 정도이다, 고려를 개국했던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이런 훈시를 남겼다,

 

其八曰: 車峴以南公州江外山形地勢?趨背逆人心亦然彼下州郡人?與朝廷與王侯國戚婚姻得秉國政則或變亂國家或?統合之怨犯

生亂且其曾屬官寺奴婢津驛雜尺或投勢移免或附王侯宮院姦巧言語弄權亂政以致?變者必有之矣. 雖其良民不宜使在位用事.

 

"8조는, 차현(차령산맥) 이남과 공주강(금강) 밖의 산형지세는 모두 배역의 형세이니 인심 또한 그러하다, 저 아래 동네의 사람들이 조정에 참여하면, 왕후 국척과 혼인을 하여 국정을 잡게 되면 혹 국가를 변란케 할 것이거나, 혹은 통합된 원한을 품고 국왕이 하는 일을 가로막아 난을 일으킬 것이다,

 

또 일찍이 관청의 노비나 진역의 잡역에 속했던 무리들이 혹 세력가에 붙어서 요역(徭役)을 면하거나, 혹 왕후나 궁원에 붙어서 간교한 말을 하며 권세를 잡고 정사를 문란하게 해 재변을 일으키는 자가 있을 것이니, 비록 양민이라도 벼슬자리를 주어 등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