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지원(知園)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학으로 컴퓨터와 DB의 논리구조를 파악해 간단한 프로그램은 직접 짜서 쓴 ‘파워 유저’였다. 1994년 정치인 정보화 통합관리 DB 시스템 ‘한라 1.0’을 개발했다고 해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인명·조직·일정·선거·과제 등과 같은 일상적인 정치활동 정보만이 아니라 데이터가 상호 연계돼 새로운 정보를 창출함으로써 의사결정 보조수단으로까지 활용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이었다. 당시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하던 노 전 대통령은 “궁극적인 목표는 지방자치시대에 대비한 공공 데이터서비스 구축”이라고 말했다.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증발’ 사태와 관련해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e지원(知園)’도 노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청와대의 모든 업무를 전자적으로 처리하도록 한 이 시스템에는 혁신적인 철학과 도구가 담겨 있다. 이를테면 문서관리카드에 ‘경로부’라는 게 있다. 문서의 기안부터 최종 결재까지 각 단계에서 첨삭이나 내용 변경이 이루어지는 흔적이 기록되는 곳이다. 대면 보고나 결재를 통해 생산되는 종이문서는 최종 결재자의 생각만 문서에 남게 되지만 e지원에서는 행정관·비서관·수석·대통령 등이 처리한 업무행위가 모두 드러난다. 기록의 신뢰성과 행정의 투명성·책임성이 실현되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다. 노 전 대통령도 “기록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 “다른 건 몰라도 e지원만큼은 앞으로 계속 썼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e지원에 대해 강한 확신과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으로 e지원 대신 ‘위민(爲民)’을 사용했다. e지원의 주요 기능 가운데 일부가 빠지거나 활성화되지 않는 등 e지원의 ‘짝퉁’ 수준이라는 게 기록학계의 얘기다. 일단 등록한 기록은 삭제가 불가능한 e지원의 전자문서와 달리 종이문서는 멸실이나 폐기 가능성이 늘 열려 있다. e지원이 참여정부를 끝으로 수명을 다한 것을 기록전문가들이 기록문화의 큰 손실이자 후퇴로 받아들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현재 e지원시스템은 노 전 대통령의 기록과 함께 대통령기록관에서 잠자고 있다. 남북정상회담록을 찾기 위해 e지원을 구동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정상회담록은 물론 e지원의 가치도 함께 발견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