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넘은 귀족이 재미로 과학을 했고, 김치국은 천민이 과학을 했다고 했는데..


2000년 이전에 김치국에서는 후로그래머의 단가가 싸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후로그램 또는 PC를 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돈 좀 있는 집 아니면 안됬다.


8비트 PC가 당시에 80만원 이었는데.. 당시 물가 수준 생각해보면 얼마나 비싼 애들 놀이기구(?) 였는지 알꺼다.


IBM XT만 해도 첨에 들어올때는 업무용으로 350만원대였음.



솔직히 후로그래머의 단가를 떨어뜨린 것은 

2000년 이후의 학원 대량 생산도 원인이긴 하지만..

청계천에서 일반 양민들도 싼값에 컴터를 살 수 있게 싸구려 호환 기종 대량으로 찍어내준 것도 영향이 컸다.


하다 못해 라이센스 부분이 무척 엄격했다면..

컴퓨터 샀더라도 후로그램 깔 비용이 없어서 대부분의 양민은 컴퓨터 개발 업계에 뛰어들지 못했을 것임.


결국 돈이 있는 집안 또는 그런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집단만이 하던게 후로그래밍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