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주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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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치학자 브루노 자이델은 한국에 와서 “나는 분명히 한국 사회에 와서 ‘근대화’ 문제에 관한 한국 정치학자들의 논의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정치학자들이 한국 문제에 관해 사용하는 개념들은 마치 나로 하여금 ‘고도의 소비사회’가 구가되고 있는 미국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라고 말했다.

정 치학만 그런 건 아니었다.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철학자 백종현은 최근 100년 한국의 철학사상의 큰 줄기는 사대주의에 이끌렸다고 평가했다. 일제 통치기간을 거쳐 그 여파가 미친 1960년대 초 제1차 군사정부 성립 시기까지는 독일 철학 일색이었다가 차츰 미국의 철학 경향을 띠게 되고, 1980년대에 맑스주의가 생겼으나 구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곧 사라졌으며, 다시 미국 철학의 득세와 함께 백가쟁명()의 판국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학과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인문사회과학이 그런 문제를 공통적으로 안고 있었다. 바로 이런 학문 주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90년대에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연 세대 교수 조한혜정은 92년에 출간한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에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 갈 언어를 가지지 못한 사회, 자신의 사회를 보는 이론을 자생적으로 만들어 가지 못하는 사회”를 ‘식민지적’이라고 불렀는데, 그가 말하는 ‘식민지성’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현상을 뜻하기보다는 지식과 삶이 겉도는 현상을 뜻하는 것이었다.

조한 혜정은 94년에 출간한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2』에서 ‘식민지성’이라는 이름 아래 모아질 수 있는 지식인 담론의 특성을 ‘보편적 이론에 대한 집착’, ‘외부의 권위에 기댐’, ‘일상성으로부터 유리된 지식 생산’ 등으로 규정했다.

조 한혜정은 “식민지 지식인은 식민 종주국에서 만들어진 지식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수정할 근거도,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며 또 그럴 능력도 없으므로 아예 그가 선호하는 어떤 절대적인 틀을 정해 놓고 그 속에서 소비자가 되어 버린다. 그 틀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굳혀 가는 길을 찾는 데에만 급급하다. 식민 종주국에서 지식인은 지식의 소비자이자 생산자이지만 식민지의 지식인은 오로지 소비자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여러모로 값을 치르고 산 지식을 가능한 한 비싼 값으로 팔고자 할 뿐이다”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학문 주체성 (세계문화사전, 2005. 8. 20., 인물과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