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컴퓨터가 좋아, 프로그램 개발에 짜릿함을 느껴 개발자 경력을 시작했다 좌절한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개발자를 잘 대우하기로 소문난 한 중견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근무했던 이인화(41, 가명) 씨는 아예 '이 바닥이 싫어' 업계를 떠났다.

"사장님이 정말 특이한 사람이었어요. 무조건 빨리 출근하고 오래 책상에 붙어 있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니 자연히 회사는 '보여주기식'으로 운영되죠. 이러니 누가 열심히 일하겠어요? 일찍 출근해서 낮엔 놀다가 밤에 들어와서 밥 먹고 야근하고…. 자연히 회사의 개발 능력은 안 늘어나니 온통 남이 만든 코드 갖다 베껴서 대충 제품 만들고. 괜히 저 혼자 '잘못됐다'고 말하고 다니다 사장님한테 찍혀서 한직으로 배치받았죠. 어떻게 더 다닐 수가 있겠어요? 이제 이 바닥은 지긋지긋해요."

이 씨가 근무했던 회사는 워낙 강한 노동 강도로 인해 직원들이 집에 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아파트의 방 몇 개를 계약해 한 집당 직원 십여 명이 숙소로 사용하며 살았다.

"사장님이 일을 많이 하길 원하다보니, 가정이 있는 사람은 싫어했어요. 한번은 손님 만난 자리에서 자랑스러운 말투로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가 이혼한 애 많아'라고 말하더라고요. 기가 차죠. 우린 사람도 아니에요?"

많은 IT개발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공학도로서 삶이 지긋지긋하다는 것이었다. 관리직군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노동강도, 그리고 마치 '언제든 쓰다 버릴 부품'처럼 취급받으며 그저 정체되어 가기만 하는 현실에 상당수 개발자들이 좌절하고 있었다.

이는 얼마 전 뉴스로 소개돼 충격을 안겼던 거대 금융기관 계열사 직원 양모(34) 씨의 사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양 씨는 수년 내내 자정을 넘는 시간까지 일하다 면역력 저하로 인해 지난해 1월 폐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연차 휴가가 남은 상태에서 병가를 냈으니 연차수당을 반납하라'고 요구했다. 초과근무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그의 강한 노동강도는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양 씨는 야근을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IT산업노조가 진보신당과 함께 지난 4월 6일부터 15일까지 IT노동자 1665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연간 평균 3000시간의 노동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68)에 비해 무려 1232시간을 더 일했다.

이에 반해 야근, 특근 수당이 법대로 지급되거나 대체 휴가가 주어지는 경우는 2.3%, 2.5%에 그쳤다. 95%를 넘는 절대 다수의 IT노동자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셈이다. IT노동자의 82.2%가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79.2%는 근골격계 질환을 겪으면서도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