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세계적 천재 수학자 이임학을 기억하는 국가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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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타국서 ‘리군이론’으로 수학 역사 쓴 나…날 버린 조국, 이제 와서 ‘국민’이라 하네

1947년 서울 남대문시장을 지나던 25세 청년이 미군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미국 수학학회지 한 권을 발견한다. 경성제대 물리학과 수석 졸업생인 이 눈 밝은 청년은 당시 미국의 저명한 수학자 막스 초른이 “모르겠다”고 한 문제를 풀어 잡지사에 투고한다. 정부도 수립되지 않은 국가의 무명 청년이 보낸 편지는 2년 뒤 논문 형태로 출간돼 세계 수학계를 놀라게 했다. 청년의 이름은 이임학이었다.
 

잊혀진 천재수학자 이임학 (1922~2005)


 
이임학은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리군이론’으로 세계 수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광복 70주년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과학기술 성과 70개를 선정하고 이임학 박사를 소개했다. 이임학은 이승만 정부와 대립해 유학 시절 국적을 박탈당하고 40년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 내용은 소개되지 않았다. 불편한 것은 지우고 긍정적인 것만 기억하는 역사 서술 방식의 전형이다.


헝가리 출신 수학자 폴 에르되시(1913~1996)는 평생 떠돌이로 살았다. 조합론, 그래프 이론, 정수론 등에서 큰 업적을 세운 ‘천재’ 수학자였지만 일정한 집도 직장도 없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에 흩어진 수학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숙식을 해결하고, 집 주인과 함께 연구하다 연구가 마무리되면 훌쩍 떠났다. 수학사에 길이 남은 1500편가량의 공동연구논문이 이런 식으로 나왔다. 그는 냉전시대 동구권에 속한 헝가리 출신이란 이유 등으로 1950년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스파이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방랑벽과 전 세계 수학자들의 환대를 막을 순 없었다. 1980년대 그는 전 세계 어디든지 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에르되시는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해 한국계 수학자 이임학을 찾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이론(리군·Ree群 이론)이 있던 세계 수학계의 거물 이임학은 에르되시가 건넨 봉투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임학은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났다.
당시 함흥은 식민지 조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