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24405.html
운화측험
최한기 지음, 이종란 옮김
한길사·2만5000원
"문명의 교차로에 놓였던 조선 후기 많은 학자 가운데서도 혜강 최한기(1803~1877)는 특히나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다.
집안이 부유한 편이었던 그는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 매달려 많은 저술을 남겼다. 특히 명·청대 중국에서 나온 서학 서적을
깊이 탐독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당시 지배적 사상이었던 주자성리학과 서양 기독교를 동시에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독자적인
학문의 몸부림을 쳤다.
19세기 한국 철학을 파헤치고 당시 전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해온 이종란 박사가 혜강의 저작 <운화측험>을
우리말로 옮겨 펴냈다. 그는 혜강에 대해 “학문의 혁명가를 자임하여 주자성리학과 서양 기독교를 동시에 비판·극복하고 동서를
아우르는 새 학문을 세우려고 했다”고 평가한다. <운화측험>에 앞서 옮긴이는 이탈리아 선교사 알폰소 바뇨니가 쓴
<공제격치>를 먼저 번역했다. <공제격치>는 4원소설, 지구구형설 등 서양의 과학 지식을 한문으로 풀어쓴
책으로, 동양 학자들에게 영향을 줬다. 일각에서 혜강의 <운화측험>이 <공제격치>를 베끼고 답습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두 책을 모두 공부한 옮긴이는 “혜강이 <공제격치>의 틀을 유지하고 참고한 부분이 많지만, 두 책의 우주관 또는 자연관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최한기 지음, 이종란 옮김
한길사·2만5000원
혜강은 자신의 학문을 ‘기학’이라 불렀는데, 이는 나중에 <기학>이란 책에 집약된다. 혜강은 ‘유형지신’, ‘유형지리’를 기학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이는 기독교를 ‘무형지신’이라 비판하고 주자성리학을 ‘무형지리’라고 비판한 것과 대응된다. 검증할 수 없는 기독교의 ‘신’과 존재의 기반이 없는 주자성리학의 ‘이’를 가지고는 존재의 근거에 대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탐구를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벼슬도 못한 10선비님 일기장이 후손들이 잘 보관해서 한글역본도 다 나오네
최한기가 지었지만 시대 사람들 모두가 함께 만든 거다 다름 없다.
최한기는 네가 말하는 씹선비를 밑바닥부터 비판한 사람이다. 최한기를 잘 모르면 오늘날의 씹선비들을 효과적으로 까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