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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 이론과 그 의미

전  철


 


 
 
 
 
 
 
 
 
 
 
 
 
 
 
 
 
 

 

        

 







1, 들어가며 : 왜 동시성 현상이 문제인가? 

 
 
우리는 일상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 번 왔었다는 아련한 느낌, 혹은 현실에서의 이 순간은 언젠가 꿈에서 한 번 보았던 순간 같다는 느낌을 자주 갖는다. 어떤 친구는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아침에 집에 전화를 걸어보니 아버님이 병으로 누우셨다는 말을 한다. 실로 인과율과 통계법칙으로 설명이 안되는 이러한 경험은 본인 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속에 내밀하게 간직한 경험들일 것이다. 

어쩌면 나를 포함하여 우리가 만나는 이 생경하고 모호한 경험은 태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 가운데 면면히 축적된 사건이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경험을 그리 쉽사리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경험을 포섭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포용력은 경험의 생경함 앞에서 언제나 쉽게 좌절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강렬한 경험과 이미 타진해버린 나머지 빛이 바랜 청동거울일런지도 모른다.

칼 구스타프 융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언어로 설명이 불가능한 경험 속에 산 사람이었다. 융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인과적으로 연결이 불가능한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과거와 미래의 모호한 맞물림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깊이 직시하였고, 환자들을 돌보면서 이와 관련한 다양한 임상 사례를 체험한 사람이었다. 사실 융의 삶의 대부분은 이러한 '희귀한 체험과 환상'[1]으로 채색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융의 담대함은 '희귀한 체험과 환상'의 세계에 자신을 내어 던졌을 뿐만 아니라 언어로 쉽사리 해명될 수 없는 그 영역에 대하여 매우 진지하고, 진솔하게, 혹은 대담하게 돌파해 나아갔다는 점일 것이다. 당시 융은 의사의 가운을 입고 있었던 과학자였던 만큼,


동시성,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76484.html


직장인, 책에서 길을 묻다
안에 작은 원통이 들어있는 투명한 회전 원통이 있다. 작은 원통과 큰 원통의 사이 공간에 글리세린처럼 점성이 높고 투명한 액체를 채운다. 그리고 액체 속에 불용성의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아무런 동작을 가하지 않으면 잉크는 글리세린 속에 한 점으로 떠 있다. 이 때 손잡이로 바깥쪽 원통을 돌리면 잉크 방울은 가는 실 모양을 그리며 서서히 퍼진다. 계속 돌리면 잉크 입자들은 투명한 글리세린 속으로 점점 엷게 퍼져서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된다. 놀라운 부분은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