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화 칼럼] ‘객지’를 찾게 만드는 세상, 한국판 ‘게 공선’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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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글의 세상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며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새누리당의 비정규 악법은 그나마 2년 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과 기회마저 없애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규제 없는 파견확대로 합법적인 사람장사인 파견노동으로 좋은 일자리를 뺏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이 50이 넘으면 당연히 파견노동을 해야 하는 법안이기도 합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됐다. 위원장은 기자회견문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법 개혁을 규탄했다. 민주노총이 12월 16일 3차 총파업을 했고,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해서 내년 초까지 비상투쟁태세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법 개악 움직임을 보며, 노동자의 내일을 상상해본다.

일본 프레카리아트가 부활시킨 『게 공선』

2008년 일본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1929년에 고바야시 다키지가 쓴 소설, 『게 공선(工船)』이 무려 80만부가 팔리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소설은 법적인 보호 장치 없이 게잡이 어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인 노동착취를 견디다 못해 자연발생적으로 조직적 저항에 나서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80년이 지난 소설을 현재로 불러온 배경은 프레카리아트(precariat)1)의 현실이다. 일본에서는 1985년 노동자파견법 제정으로 노동자 파견에 대한 법적 규제가 풀렸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의 영향으로 노동자 파견이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불안정한 노동, 프레카리아트 계급을 탄생시켰다.

게공선 소설책 표지ⓒ월간 말

프레카리아트는 1920년대 고립된 어선의 노동자의 처지에서 자신을 보았다. 현재 일본 프레카리아트의 노동조건이 아무리 열악한들 1920년대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선동적인 목적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과거를 불러온 것이다, 라고 혹자는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프레카리아트들은 1920년대 노동자와 자신과의 근본적이며 중요한 공통점을 찾았는데, 그것은 캄치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노동자와 자신들이 일회용으로 사용되는 노동력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게 공선』의 표현대로라면 ‘버리는 종이’와 같은 신세라는 점이다.

프레카리아트가 『게 공선』을 통하여 얻은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우리에게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다’는 의식일 것이다. 책 속에서 이러한 노동자들의 각성은 구축함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갑판에서 일하고 있으면, 수평선을 가로질러 남하하는 구축함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 후미에 일본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보였다. 어업노동자들은 흥분해서, 눈물을 글썽이며 모자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저것뿐이다. 우리 편은 저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편이라 믿었던 구축함의 군인은 파업 후 공선에 올라와 파업의 핵심 노동자를 호송해가고, 자신들을 감시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 보고 노동자들은 ‘우리나라의 군함이 국민의 편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렇게 ‘게 공선 현상’은 2000년대 일본의 프레카리아트의 심각성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들 스스로의 저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객지, 70년대로 역진하는 한국

한국의 비정규직 상황은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노동 관련 지표가


백왕같은 꽃게 잡이 어선 노동자들이 대한민국 군함 보고 자유대한 만세 부르며 눈물을 글썽 좋아했는데 군함이 다가오더니 일 못하는 놈이라며 잡아간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