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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은 미 CIA가 다시금 ‘고문’이라는 악몽으로 빠져들어간 때였다. 오바마의 쿠바 방문과 함께 관타나모의 불법 구금시설이 재조명을 받았고, 28일에는 영국 가디언이 CIA가 성적 수치심을 주기 위해 촬영한 테러용의자의 나체 사진 1만4000장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CIA가 어떻게 외국인들을 납치하고, 고문했는지, 또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 들어서 CIA의 고문은 다시 불법화되었지만, 관련 증거는 공개되지 않았고 공공연하게 이루어진 고문 행위에 대한 처벌은 아예 시도되지도 않았다. 알자지라는 지난달 27일 이와 관련한 영상보도물을 공개했다. 관련 기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원문은 The dark prisoners:Inside the CIA's torture programm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알발루치가 직접 한 첫 번째 인터뷰이다.
- ‘심문’받을 때 물이 어떻게 쓰였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 물고문 중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얼음물 고문이었다. 그들은 나를 큰 천 위에 세워놨다. 이를 ‘방수포’라 부른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들은 내가 넘어질 때까지 나를 때렸고 쓰러지고 나면 반듯이 눕혔다. 그 이후 네 사람이 방수포의 귀퉁이를 하나씩 잡아 올려 내가 방수포의 가운데에 가면 그들은 내 얼굴에 얼음물을 부었다.
내 몸은 완전히 발가벗겨져 있었고 얼음물이 부어지기도 전에 이미 너무 추웠기 때문에 얼음물은 차갑다 못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한 사람이 내 얼굴에 얼음물을 붓는 동안, 네 사람은 자기가 잡고 있는 방수포의 귀퉁이를 내리고 올리며 얼음물을 이리 저리로 몰았다. 고인 물 밖으로 얼굴이 나오면 나는 숨을 들이쉬려 했다. 그러면 두 사람이 다시 귀퉁이를 들어올려 얼음으로 내 몸통을 덮고 얼굴에 얼음물을 다시 들이부었다. 공기는 못 들이마시고 나는 얼음물만 먹었다.
그들이 나를 죽인 후 그 방수포로 내 시신을 싸려고 한다고 나는 확신했다.
- ‘잠 안 재우기‘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것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내가 굶주리고 거의 얼어 죽을 지경에서 나체의 상태로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돼 있는데, 그들은 며칠씩 나에게 잠을 못 자게 했다. 아주 고통스러운 포즈로 나에게 수갑을 채우거나 나를 묶었다. 그래도 나는 잠을 자려 했다. 하지만 잠이 들 때마다 그들은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를 때렸다. 문쪽에서 사람 기척이 들리면, 나는 그들이 내가 잠든 줄 알고 나를 때리려고 온다고 생각했다. 나를 때리고 나면 그들은 나에게 다시는 잠들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나를 다시 묶어 놓은 다음에 나가곤 했다.
수없이 얻어 맞다 보니 잠과 통증을 등치하게 됐다. 그들은 내가 잠을 못자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 깨어있도록 나를 훈련시켰다.
- CIA의 심문을 받는 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한가지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
= 2003년 5월 말인가 6월초 쯤이다. CIA 고문실에 끌려간지 며칠 안 되어서였다. 그들이 내 머리를 밀었다. 그리고는 반복적으로 내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매번 셀 수 없을 때까지 계속 했다. 머리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그들이 내 머리를 계속 부딪칠수록 이 불빛이 강해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리 속에 강한 전류를 느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캄캄해지면서 정신을 잃곤 했다.
정신을 차려 보면 나는 다른 장소에 옮겨져 있었다. 불빛이 전혀 없는 어둡고 차가운 감방의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 CIA의 프로그램을 고안한 사람들이나 당신을 심문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 내가 나를 고문했던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으면 한다. 나는 내게 가한 고문 때문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보았다. 어떤 때에는 그들이 나보다도 더 괴로워했다. 나에게는 신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잔인함밖에 없어서였을 것이다.
유별날 정도로 잔혹한 고문을 마친 후면, 나를 고문했던 사람들이 마치 친구인 양 와서 말을 걸곤 했다. 자기네가 누굴 위해서 일하는 것 같냐고. 내가 “FBI”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들이 나를 고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내게 직접 물어볼 때도 있었다! 나는 나를 고문한 사람들의 인간성과 비인간성 모두를 봤다.
나를 고문한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내 나를 취조했다. 내가 있던 각종 구금시설에서 150명 정도를 만난 것 같다. 온갖 전문가들이 다 왔다. 로켓 전문가가 와서 내게 로켓에 대해 물었다. 알카에다의 난장이에 대해 알고 싶다며 난장이까지 보냈다! 나는 그 모두와 상대했고 그들이 듣고 싶어할 것 같은 모든 얘기를 다 해줬다. 더 이상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날 심문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수백가지 질문을 해대는 또 한 무더기의 사람들에 불과했다.
나를 고문한 사람들은 내가 그들로부터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나는 영원히 그들의 수중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고문실태 보고서를 보니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CIA가 나에 대한 관할권(operational control)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난 군사법정에서 CIA가 관여하고 있음을 봤다. 그리고 군사법원에 서 있는 CIA 통역관을 보는 순간, 나를 고문했던 사람들의 협박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이 인권국가라고??????
결과가 과정을 어느정도는 합리화 시키기 때문에 가능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