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진로는 다양했는데, 크게 세 가지였다
기획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기획자는 게임의 컨셉, 구조, 규칙 따위를 설계하고 적당한 UML로 만들어서 프로그래밍 팀에 넘겨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근데 어느정도 프로그래밍을 접한 문과충이 그 자리를 점령하고 있길래 내가 후달릴것 같아서 그 진로는 포기했다
디자이너는 기획자와 같이 컨셉아트를 제공하고, 마야 따위 3D 툴로 모델링을 하고, 움직이게 애니메이팅 하고,
UI 디자인이랑 스크립팅도 좀 하고, 좆같은 도트도 몇 개 그리고 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도 이미 미대 나온 전문인이 슬금슬금 하이브리드 아티스트를 넘보는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사장새끼가 '자네 쉐이더좀 건드려보지 않겠나' 라고 말하는걸 듣고 좆같은 소리 하지 마시라고 하며 거절했다
결국 나는 프로그래머 업무를 맡게됐는데, 나는 서버 구축을 맡게 되었다
클라이언트 팀은 일종의 아수라장이었는데, 지난 프로젝트에 사장이 자체개발 엔진으로 진행해보자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인력과 자금력이 모자란 좆소기업은 아무리 날고기는 인재가 있어도 풀스택 개발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상당히 능력있는 스타팅 멤버의 일부가 혼을 갈아넣었음에도 조잡스러운 결과물을 목도하곤 회사를 나가버린 후로는
적당한 상용 게임엔진을 가져다가 만들고 있는듯 하였다
그랬던 것 같다고 가정문으로 말하는 이유는, 내가 금새 쫓겨났기 때문이다
서버 구축에는 학부시절 관심도 없던 DB, 보안, 통신 따위의 지식이 필요했는데, 이력서에 MySQL 능숙이라고 구라친 것이
들통났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서버에 손을 대면서 내가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기에, 이딴 좆소기업 줘도 안먹는다고
내심 내 발로 걸어나온 것 마냥 자위를 했다
쫓겨난 뒤로 실업급여로 생계를 연명하면서 지난번에 갈 수 있었던 대기업 리스트를 정리했다
좆소에서도 쫓겨난 잉여가 무슨 수로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겠냐마는, 꿈이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대충 알아보니 유니티가 대체로 많이 쓰이길래 학원에서 단기과정으로 뚝딱 배우고 대기업 클라이언트 직군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막상 들어가서 업무를 해보니, 서버와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정말 진지하고, 재밌을 것 같고, 열의가 넘치는 회의는 주로 팀장급 이상의 회의였고, 나를 비롯한 평사원들은
그저 시키는 간단작업을 반복하는 일종의 심부름꾼이었다
한번은 기업 창립 n주년을 맞아 대규모 회식이 있었는데, 최근에 인수됐다는 p프로젝트 팀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그 사람은 p프로젝트 팀의 스타팅 멤버인데, 석사까지 공부하고 지금의 팀원들과 게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 팀원들의 전공은 매우 다양했는데, 네트워크 쪽으로 박사까지 한 사람의 공이 컸다고 했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병렬 처리를 이용해서 굉장히 독특한 컨셉의 게임을 기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이것저것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굉장히 신나는 투로 얘기를 해 줬는데, 나는 어려워서 다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의 열정과 재능이 부럽다고 생각하며 내 발목을 잡은 지잡대 생활을 회상하며,
어쩌면 내 스스로가 부족했던 탓은 아닐까 하는 의문과 함께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물론 꿈이었으므로 상상속의 이야기이다
자각몽 ㅁㅊㄷ 이렇게 상세히 기억하다니
금새->금세 [리듬 맞춤법 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