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siatimes.news/news-ko/2016/03/29/한국전쟁의-패전은-바로-이사람-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아이들에게 6.25전쟁 즉 한국전쟁의 패전의 역사를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것이라고는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패하였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 이 걸 사실로 믿고 삽니다. 그래서 국민들 중에 한국전쟁에서 왜 연합군이 북한지역에서 중공군에게 패퇴당하였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전쟁의 전황을 결정적으로 가른 큰 두개의 전투(작전)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맥아더로 상징되는 ‘인천상륙작전’이고, 또 다른 전투가 바로 ‘청천강전투'(1950년 11월)입니다. 이 전투에서 유엔군의 주력인 워커 장군의 미 8군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연합군을 휴전선 이남으로 후퇴시킨(보통 1.4후퇴라고 하죠. 1951. 1. 4.)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도 조금 아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청천강전투의 결정적인 패인이 한국군에게 있엇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후, 미 8군이 주축이 된 연합군은 1950년 10월 서부전선에서 북한군을 거의 신의주까지 몰아냅니다. 그런데, 이 때 중공군이 참전하게 되고, 신의주 아래 온정리 라는 곳에서 처음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전황이 좋지 못하다고 판단한 유엔 사령부는 연합군을 청천강 선으로 물리게 되며, 방어를 위하여 부대를 재정비하고 청천강 일대에 전선을 구축하게 됩니다.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청천강 서부 지역에는 한국군 1사단, 미군 24사단, 제1기갑사단 등을 배치하고, 천청강 상류인 덕천군, 영원군에는 한국군 제2군단(덕천군-한국군 7사단, 영원군-한국군 8사단, 예비사단-한국군 6사단)을 배치합니다. (아래 지도를 참조하세요)
중국군 사령관 팽덕회는 위와 같은 병력배치를 파악하고, 전혀 주저함 없이 1950년 11월 24일 한국군이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덕천과 영원을 공격하여 미군의 퇴각로를 차단하라는 내용으로 공격을 지시합니다. (팽덕회는 참전 이래 한국군을 오합지졸로 평가했고, 주로 한국군 방어지역을 공략하는 전술을 사용합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 7사단 및 8사단은 완전히 궤멸되었고(전 병력의 60%가 사망, 실종, 포로), 심지어는 연대장 3명이 생포되고, 1명의 연대장은 전사하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린민영웅 유재흥 이야기 하려나보네
패인 분석을 잘못 하면 또 진다는 사실.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
https://oriwiki.net/역사는_반복된다
도와준 사람을 욕하는 건 좀... 그렇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