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희소성을 넘어서
베르나르 리에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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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째서 대안적 통화에 그렇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가? 돈이란 우리의 코를 꿰고 있는 쇠고리 같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고, 그래서 오히려 이제는 그것이 우리를 멋대로 끌고다니고 있다. 내 생각에 지금은 우리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지 제대로 궁리하지 않으면 안될 때인데 ― 나는 그 방향이 지속가능한 삶과 공동체를 향해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 거기로 가기 위해서 새로운 통화체제를 설계해야 한다.
그러니까 돈을 어떻게 설계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많은 일을 근원적으로 결정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사람들과 기업들이 시장과 자원을 위해 경쟁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돈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통화체제를 설계한다는 것은 사람의 많은 노력의 방향을 결정하는 목표를 다시 설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탐욕과 경쟁은 어떤 불변의 인간성의 결과라고 믿지 않는다. 탐욕이나 ‘희소성’에 대한 두려움은 실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증폭되어왔다는 결론에 나는 다다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모든 사람을 다 먹여살리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고, 또 이 세계에는 누구에게나 충분한 일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런 일에 대한 대가로 지불해야 할 돈이 충분치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희소성’은 우리의 국가적 통화체제에 기인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은행의 임무는 통화의 ‘희소성’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살아남기 위하여 서로서로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돈은 은행들이 그것을 누군가에게 빌려줌으로써 창조된다. 한 은행이 당신에게 10만달러를 제공할 때, 당신은 그 원금을 소비하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경제속에서 순환하게 된다. 거기에 대해 은행은 다음 20년 동안에 당신이 20만달러를 갚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은행이 나머지 10만달러 ― 이자에 해당하는 ― 를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은 당신을 험난한 세상으로 내보내어 그 나머지 10만달러를 벌도록 다른 사람들과 피나는 투쟁을 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딴 사람이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반드시 져야 한다는 것인가? 딴 사람들이 그 이자를 갚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면 어떤 사람들은 채무불이행 상태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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