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redian.org/archive/10466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맞아 각 대학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소위 ‘지잡대’ 시국선언 관련한 글들이 SNS상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지잡대는 시국선언 할 자격이 없다.”는 글이 떠도는가 하면 “서울대생의 1표와 배재대생의 1표는 모두 값진 1표이고, 내 옆의 가족들의 안위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면 행동해야 한다.”는 배재대생의 글이 누리꾼들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한국사회 저항운동은 대학생 운동이 이끌어왔고 그 중에서도 소위 명문대생들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대를 위시하여 공부 잘하는(시험 잘 본) 학생들의 선구자적 희생정신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과연 사실일까?
1960년 4월 혁명부터 보자. 지금은 제법 알려진 사실이지만 4월 혁명의 주역은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들과 도시빈민이었다. 한국학생운동사에 가장 큰 유명을 떨친 서울대 문리대조차 대광고 학생들이 교문을 흔들며 ‘형님들 나오세요.“ 했을 때 비로소 4월 19일 시위에 동참했다.
대구 경북고의 2.28 시위, 마산상고 김주열의 사망에서 알 수 있듯 4월 혁명의 불꽃은 고등학생 시위였다. 고등학생들은 4.19 이전부터 이미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주축은 경기고, 서울고처럼 명문대 진학이 예비된 명문고 학생들이 아니라 실업고, 야간고 학생들이었다. 당시 중심적으로 참여한 학교는 대동상고, 선린상고, 강문고, 중동고 등이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월혁명 구술기록 중에서)
4월 혁명의 경험으로만 봤을 때 학생들의 저항운동 참여는 실업.야간고교생 > 일반.명문고교생 > 대학생 순이다. 강남에서 여당 몰표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실에 대한 분노는 물적 토대에 기반을 두게 마련이고 기득권에 가까울수록 저항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생 운동이 나라를 바꿨다는 1980년대는 어떠할까.
휴... 이런 상황에도 갈등과 분열을 교묘하게 선동하려는 걸 보면 참 답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