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와 사이버네틱스의 개념을 고안한 노버트 위너(1894~1964)
컴퓨터의 선구자 존 폰 노이만(1903~1957)
위너가 컴퓨터의 가능성을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네트워크의 측면에서 찾은 반면,
노이만은 컴퓨터를 복잡한 계산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능률적인 도구라는 관점에서 보았다.
“노이만처럼 IT를 도구적 관점에서 보면 IT 기술은 비즈니스에 불과합니다.
반면, 위너가 말한 사이버네틱스 개념은 애초부터 IT를 네트워크로 보는 시각입니다.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건 소유가 아니라 공유, 속박이 아닌 연결, 독점이 아닌 협력과 협업이죠.”
넷의 기반을 닦은 이들은 위너의 후예들이었다.
1969년 벨연구소에서 현대적 컴퓨터 운영체제의 원형인 유닉스를 공동개발한 켄 톰슨은
연구소 연구자들이 컴퓨터 게임 스페이스워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닉스를 만들었다.
수익률의 관점에서는 불가능했지만 1960년대 말 순수함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의 문화속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근거리통신망(LAN) 이더넷을 고안한 로컬 네트워크의 아버지 로버트 멧칼프는 이더넷 기술을 독점하는 대신 개방했다.
덕분에 여러 기업이 저렴한 네트워크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고, 결국 로컬 네트워크가 비약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다.
물리학자 팀 버너스 리가 최초의 WWW을 만든 것도 동료 학자들과 물리학 논문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미닉스 OS 제작자 엔드류 타넨바움
https://ko.wikipedia.org/wiki/앤드루_타넨바움
Unix는 1969년에 벨 연구소에서 인터랙티브 시분할 시스템으로서 만든것이 그 시초가 된 운영체계이다.
1960년대 MIT, 벨 연구소(AT&T Bell Lab.) 및 제너럴 일렉트릭(GE co.)은 “GE-645″ 메인프레임 컴퓨터 상에서
돌리기 위한 실험적인 운영체제인 멀틱스(MULTICS, MULTiplexed Information and Computing Service)를 함께 연구하고 있었다.
이 연구의 목적은 향상된 보안, 시분할 처리와 세그먼트라고 불리는 파일저장 방식 도입등
여러가지 혁신적인 기능들을 갖는 쌍방향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개발이 끝나고 MULTICS 운영체제가 릴리즈되어 “GE-645″에 탑재하였으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수행 속도가 너무 느리고, 사용하기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사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고,
결국 MULTICS 연구는 1969년에 중단되었다.
AT&T Bell Lab.은 MULTICS Project가 중단된 이후에 연구원들을 다른 업무에 배치하였다.
MULTICS Project에서 시스템 프로그램 일원이었던 AT&T Bell Lab.켄 톰슨(Ken Thompson)은
실패 이후에 당시 유행하던 일괄처리 운영체제에 매달리거나, 실패작이었던 MULTICS를 다시 시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때 켄 톰슨이 관심을 갖고 있던것은 MULTICS에서 구현되었던 Space Travel이라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Space Travel은 GE-645 메인프레임 컴퓨터 상에서 매우 느리고,
게임을 하기 위한 비용이 많이 들었다(한번 돌릴때 마다 $75가 들었다고 한다).
켄 톰슨은 데니스 리치(Dennis Ritchie)의 도움으로 놀고 있던 미니(?) 컴퓨터 장비인
DEC(Digital Equipment Co-operation) PDP-7 어셈블리 언어로 다시 Porting을 했다.
켄 톰슨(왼쪽)과 데니스 리치
이 당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켄 톰슨의 아내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한달간 집을 떠나 있게 되고,
무엇인가 집중할게 필요했던 켄 톰슨은 한달동안 죽치고 앉아서 Space Travel 게임을 두명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DEC PDP-7을 위한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하게 된다.
거대한 운영체제를 만들고자 한것이 아닌 단순히 Space Travel 게임을 데니스 리치와 함께 하기 위해서 였다.
이 운영체제는 MULTICS, CMAS(Cambridge Multiple Access System), CTSS(Compatible Time Sharing System)의 장점을 수용하여,
PROJECT에 참여하는 여러 프로그래머 간에 DATA는 보호하면서, 공유해야할 DATA는 여러 사람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였고,
그것이 최초 UNIX OS로 1969년에 PDP-7미니 컴퓨터 장비에서 동작하는 OS가 된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운영제체를 개발할 당시 AT&T Bell Lab.에서는 개발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을 따로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PDP-7용 새로운 Multi-Tasking OS는 동시에 두 사용자를 지원해서 UNICS(Uniplexed Information and Computing System)라고 불렀다.
실제로는 브라이언 커니건(Brian Kernighan)은 멀틱스에 대한 반발로
“거세된 MULTICS”라는 “eunuchs(내시)”의 동음이의어인 UNICS라는 말장난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즉, 최초의 UNIX의 이름은 UNICS였다.
DEC PDP-7 (엄청 미니하다)
후에, Computer Science Research Group이 PDP-7보다 큰 컴퓨터에서 유닉스를 사용하기를 원했을 때까지도
벨 연구소로부터의 재정적인 지원은 없었다.
톰슨과 리치는 PDP-11/20 용 유닉스에 텍스트 처리 기능을 추가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에 따라 벨로 부터 약간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70년, UNICS(eunuchs)의 좋지않은 발음때문에 이름을 UNIX로 바꾸었고,
유닉스 운영 체제 (Unix Operating System)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가지고 PDP-11/20에서 운영되었다.
켄 톰슨(seated)과 데니스 리치(Standing) at a PD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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