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5년' 동안 김대중과 임동원이 한 일
[김기협의 냉전 이후]<55> 김대중-임동원의 평화통일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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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껏 모시고 연구활동을 돕겠습니다."

1995년 1월 23일 김대중을 자택으로 찾아가 처음 만난 임동원이 두 시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했다는 말이다. 간단한 표현에 많은 뜻을 품은 말이다.

김대중은 정치인이다. 그런데 그의 정치활동 아닌 연구활동을 돕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활동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의 연구활동을 돕겠다는 것이다. 

통일방안의 연구는 물론 임동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다. 공직생활을 통해 할 수 있는 데까지 힘껏 해온 일이다. 그러나 통일부차관에서 물러난 후 2년 동안 그 일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민간에서 그 일을 다시 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김대중의 뜻에 따라 일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김대중의 뜻이 자신의 뜻과 다르다면 언제든지 물러서겠다는 의지가 "돕겠다"는 말에서 느껴진다. 자기 일이 아닌 김대중의 일이니까, 자신이 도움이 되지 못할 때는 물러설 수밖에. 

이 만남이 있었던 1995년 1월은 김영삼 정권이 2년을 채웠을 때고, 제1차 북핵위기가 수습된 시점이었다. 이때부터 임기 말까지 김영삼 정권의 대북정책은 갈팡질팡을 계속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전향적인 입장이라 할 만한 것이 4자회담 제안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외교는 그 중요성이 컸다. 그리고 미국은 남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그 점을 십분 활용했다. (…) 

96년 봄 클린턴이 일본 공식 방문을 계획하고 있을 때 정상 외교 문제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당시 미 행정부에서는 북한의 궁핍한 경제상황과 불안한 정세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일관성 없고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둔감하기까지 한 김 대통령의 정책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때는 남한에 들르는 것이 상례처럼 돼 있었지만 클린턴은 이번만큼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문제에 관한 미국 측 내부 논의에 참여했던 미 행정부의 한 관리는


▲ 임동원 전 장관(왼쪽)과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