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 와중에 제 잇속 챙기는 미국

http://www.vop.co.kr/A00001092665.html


지난 12일 백만 명을 넘어선 사상 최대의 촛불 열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그라지기는커녕 횃불로 번질 조짐이다. 농민들의 트랙터 진격이 청와대와 가까워지는 가운데 이달 말 노동자 총파업까지 예고되면서 박근혜 정권의 운명도 시시각각 단축되고 있는 모양새다. 돌이킬 수 없는 국정의 파국을 보며 이제 새누리당 지지자조차 10명 중 7명이 퇴진을 말할 정도다.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대통령의 연설문이 발각되면서 청와대의 힘이 급속도로 마비되기까지는 채 한 달이 안 걸렸다.

그런데 지휘력을 잃어버린 청와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된 게 있다. 바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다. 식민지 역사에 대한 민족 감정을 거슬러 과거 침략군에 버젓이 우리 안방을 속속들이 보여주겠다고 나선 꼴이니 국민으로선 아연실색할 일이었다.

의아한 것은 껍데기만 남은 정권이 더 거센 퇴진 압박을 받을 게 분명한데도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인 이유였다. 이쯤 되니 청와대가 아닌 제3의 권력에 의해 추진된 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배후는 미국이었다. 미 국무부의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였던 에번스 리비어는 미국 정부가 한일 양국의 협정 체결을 독려했으며, 한미일 전문가들 사이의 비공식회담을 수차례 열어 깊이 관여해 왔다고 밝혔다. 심지어는 협정 체결의 장애 요소인 한일 양국의 역사적 문제, 즉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도 손을 뻗쳤다는 것이다. 미 정부의 정책 자문 역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브루스 클링너의 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미국이 우리 정부의 국정 공백과 외교적 무능 상태를 틈타 제 잇속 챙기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내의 정치적 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박근혜 정권이 마지막으로 기댈 보루는 미국이다. 어쩌면 박 정권이 여론의 부담을 알면서도 속전속결로 한일 협정을 강행한 일은 미국의 비호를 담보하기 위한 시그널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도덕한 권력의 연장을 위해 나라의 안보와 민족의 자존을 외세에 팔아넘긴 박근혜 정권도 문제지만, 미국의 제 잇속 챙기기도 지탄 받을 행위다.

한국현대사에서 미국은 독재 정부의 탄생과 비호에 앞장 선 그림자 권력이었다. 박정희 쿠데타 세력을 용인하고 키워준 것도, 광주 학살의 핏더미 위에 선 전두환 독재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도 모두 미국이지 않았는가.

'이게 나라냐'는 국민의 외침은, 비단 국내 문제만 치우치지 않는다. 구한말 열강의 다툼에 흔들린 한반도의 운명이 100년이 지난 오늘날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