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보] “알바만 하고 고시텔에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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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심규동 '고시텔'ⓒ심규동 제공

복도엔 3일간 소름 끼치는 적막이 흘렀다. 결국 그는 침묵을 깨고 201호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강직된 발을 드러낸 채 들것에 실려 나가는 109호 아저씨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살고 있던 고시텔에서 지난해 8월 한 사람이 죽었다. 그제서야 그는 이곳도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반년이 지나 다시 고시텔에 찾아갔다. 그와 친했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었다. 그는 방을 보러온 척하고 둘러보았다. 고시텔 총무는 그가 떠나기 직전에 죽었던 사람의 방을 소개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다시는 그 고시텔에서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신림동 고시촌, 흔히 고시 공부를 하는 청년들의 공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신림역 주변의 고시텔은 이미 '주거 공간'이 된 지 오래다.

세로 2m X 가로 150cm 1평 남짓한 방안, 고시텔 안에 홀로 사는 사람들을 찍는 사진가 심규동(30)씨와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어제는 찜질방에 자서 잠을 많이 못 잤어요. 서울에 올라오면 또 고시텔에 가야하니까요"

그는 한 달 동안 생활비를 계산했고 멋쩍은 듯이 웃어 보이며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심규동씨는 강릉에서 상경해 4년 동안 고시원을 전전했다. 평소 '사진은 취미로 하라'고 말하던 부모님을 피해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말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고시텔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그의 운명을 바꿔 놨다. 그가 이곳을 알지 못했더라면, '고시텔'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가 심규동(30)씨ⓒ심규동 제공

"나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냐 , 잠깐 있는 거지"

고시텔에 사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 보통 먼저 꺼내는 인사같은 말. 그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도시의 유목민처럼 고시원을 떠돌아 다니며 4년을 살았다. 고시텔의 사람들 중에는 십년을 넘게 산 사람들도 있었다.

"결혼 안하고 아르바이트만 하고 고시원에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서른 살이 되니까 아르바이트도 안 써주더라고요. 그곳에서 십년 넘게 오래 산 사람들을 보고 이게 정말 괜찮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됐어요"

그의 고시텔 사진은 그가 스스로에게 한 질문의 답이었다. 고시텔에 산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루는 그가 살고 있는 고시텔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어났다.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경찰이 왔는데 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고시텔 사람들을 마치 사회부적응자, 범죄 유발자로 보더라고요. 내가 이 공간에 있으니까 패배자로 보는구나. 그렇게 느끼게 되더라고요. 한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어요. 젊다는 이유로 관심을 가져주던 것들이 언젠가 사라지면 결국 사회적으로 이뤄낸 것으로 판단하니까. 삶이 더 외로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긴 사람이 사는 곳일 뿐인데, 공간이 자신을 규정하고 한계를 만들었다.

심규동 사진가의 ‘고시텔’ⓒ심규동 제공

단지 가난한 이들은 값싼 고시텔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뿐, 고시원은 '선택의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돈을 더 내면 시설 좋은 고시텔에서 살 수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스님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넓은 공간에 가야하고 돈을 모아야 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일 수 있잖아요. 그냥 잠만 잘 수 있는 공간, 다른 생각을 더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해요."

이 사진을 찍기까지 몇 번의 손사레가 있었을까? 처음엔 고시텔 사람들이 '절대 자기는 찍지 말라'며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같이 살면서 강요하지 않고 기다렸어요. 그러면서 제가 고시텔 생활에 익숙해졌어요. 그들도 '너도 나랑 똑같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고시원에 사는 사람으로 인정해주더라고요. 사람들은 '네가 사진작가로 잘 되길 바란다'면서 사진을 찍게 해줬어요”

당시 그에게는 45만원짜리 취미용 필름 사진기가 하나 있다. 결국 고시원을 찍기 위해 큰맘 먹고 빚을 내 200만원짜리 중고 카메라를 샀다. 천장에 카메라를 달고 그들의 방을 찍었고, 모든 작업이 끝난 후 카메라를 팔아버렸다. 그는 용도에 맞게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고시텔에서 산 지 10개월이 흘렀다. 사진은 미완성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고, 그는 도망치듯이 고시원을 나왔다.

"더 못하겠더라고요. 사실 작업을 포기하고 나온 거예요. 제가 그 사람이 되고 그 사람들이 내가 되니까. 제가 자꾸 그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는 것 같고, 주거생활에 침투해서 못살게 구니까 나쁜 짓인 것 같았어요. 다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고시텔에 사는 사람이 오이팩을 하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모습ⓒ심규동 제공

"고시원에 사람 사는 거 다 알아, 꽃을 예쁘게 찍으면 작가가 될 수 있어"

"사진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힘들겠다고 느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만족하고 즐겁게 잘 사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요. 그만큼 고시텔의 삶은 다양했어요"

그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의 사진은 '표지판'과 같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에겐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

"저는 단순히 사진을 잘 찍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아요. '아 이런게 있다' 알려줄 수 있는 정도. 만들어진 사진이 아니라 현장을 담은 보도사진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작품의 의도를 말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멋쩍은 듯이 웃어보였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사진을 느낄 수 있는거죠. 저는 자본의주의 몰락? 고시텔 작업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보여줘요. 부가 약간만 쏠려도 남들이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불행해지는 거죠"

"고시텔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사진을 찍는다고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