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달랐다. 정권을 잡아 기세등등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에서였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오바마 전임 정부가 지난 대선 때 트럼프 선거대책본부를 도청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근거 없다"고 일축한 반면 '러시아가 트럼프 당선을 위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권력에 고개를 숙이며 눈치를 보는 한국의 수사기관과는 다른 모습이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출처=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via Wikimedia Commons)
그러나 미국이라고 해서, 권력자에 대항해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쉬울까? 그렇지 않다. 코미 국장은 대단한 강심장일 것만 같았다.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위키피디아에서 그의 이력을 찾아보았다. 화려한 법조 경력으로 가득했지만 내 눈에 띈 건 2010년부터 2013년 초까지 미국의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에서 법률자문으로 일했다는 거였다.

브리지워터는 '급진적인 정직함(radicalhonesty)'으로 유명한 회사다. 직원들은 직급이 훨씬 높은 상사에게도 자신의 의견을 정직하게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때로는 면전에서 상사에게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Ray Dalio)라고 해서 그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번은 고객 자문을 담당하는 짐(Jim)이라는 직원이 주요 잠재 고객과 회의를 끝낸 뒤에 달리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심리학자 아담 그랜트가 쓴 책 '오리지널스'에 따르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레이, 오늘 당신이 보인 성과를 점수로 따지면 D-입니다. 당신은 50분 동안 횡설수설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보기에 당신은 전혀 준비를 안한 게 명백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준비했다면 (회의) 시작부터 그렇게 두서없이 말하지는 않았을 거니까요. 우리는 이미 당신에게 이 고객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느 미국 기업 같으면 창업자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는 직원은 당장 해고됐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 짐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가 원한 건 진실이었다. '오리지널스'에 따르면 달리오는 회의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한 피드백을 요청했다. A부터 F 사이에서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다. 브리지워터의 공동 최고경영자(co-CEO)는 달리오와 짐이 주고받은 이메일 전체를 회사 전 직원들에게 보내 배움의 기회로 삼게 했다.

이는 브리지워터 문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진실을 믿어라. 급진적으로 투명하고 극도로 개방적이 돼라. 부정직을 용납하지 말라(Trust in truth. Beradically transparent, be extremely open, anddon't tolerate dishonesty.)" 직급이 낮다고 입을 닫으면 진실은 어둠 속에 갇힌다는 것을 달리오는 안다. 때때로 진실은 고통스럽지만 그 진실을 성찰할 수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여긴다. '고통(pain)+성찰(reflection)=성장(growth)'인 셈이다.

코미 FBI 국장 역시 브리지워터에서 달리오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가 브리지워터에 입사한지 한 달 쯤 지나서였다. 20대 젊은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2주 전 회의에서 제가 보기에는 말이 안되는 얘기를 당신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얘기 같았어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코미는 당황했다. "뭐, 뭐라고? 너 같은 어린 친구가 그런 질문을 내게 하고 있는 거야?"가 첫 반응이었다. 미국 법무부 차관을 지낸 거물급 인사인 그가 직급이 훨씬 아래인 직원으로부터 '당신 얘기는 비논리적이야'라는 말을 들었으니 당황할 만 했다.

그러나 코미는 곧 생각을 고쳐 먹었다. 누구든 아무에게나 원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게 브리지워터의 경쟁력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로버트 케이건 하버드대 교수 등이 쓴 책 '에브리원 컬처(AnEveryone Culture)'에 따르면 코미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급진적 정직함을 추구하는) 브리지워터에 있다는 것을 말이죠. (다른 곳이었다면) 25세 젊은이가 내 논리를 문제 삼는 일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브리지워터가 위대한 겁니다. 왜냐하면 내 논리도 종종 흠이 있으니까요. 과거에 내가 일했던 어떤 곳에서도 이를 문제 삼는 일이 없었죠. 그러나 브리지워터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의무입니다. 용기가 아니에요. 우리가 그 젊은이를 고용할 때 그런 질문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니까요. (중략) 나는 미국 대통령 앞에서 브리핑을 한 적도 있습니다. 만약 대통령에게 어리석은 무엇인가를 말했다고 합시다. 대통령은 '바보 같은 답이야'라는 말은 하겠지만 '왜 당신은 그렇게 말하지? 당신이 일하는 방식과 어떤 관련이 있지? 내가 당신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지?' 같은 질문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 브리지워터에서는 당신이 묻고 싶은 어떤 질문도 누구에게나 할 수 있습니다. '왜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왜 다른 케이스에서는 그런 식으로 일한 거지?' 등등의 질문 말입니다."

코미가 브리지워터에서 경험한 대로라면 그는 트럼프에게 어떤 질문이든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왜 오바마 행정부가 트럼프 타워를 도청했다는 말을 한 건가요?",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여러 개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등등. 그는 사실상 트럼프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코미의 하원 정보위원회 증언을 계기로 미국 언론과 정치권이 이구동성으로 트럼프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

2013년 7월 미국 의회에서 코미의 FBI 국장 인준 청문회가 열렸을 때 척 그래슬리 공화당 상원의원은 코미에게 브리지워터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그 회사 창업자의 경영철학은 '급진적인 투명함'입니다. 그래서 수 많은 회의를 녹음합니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꼬치꼬치 캐묻도록 허용합니다. 정부의 투명성을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에서 브리지워터의 철학을 어떻게 FBI에 적용할 건가요?"

코미의 답은 이랬다. "내가 브리지워터에 간 이유 중 하나는 투명함을 추구하는 문화였습니다. (중략)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건 모든 리더들의 의무입니다. 브리지워터와 FBI는 성격이 다른 기관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브리지워터의) 가치를 FBI로 가져와서 전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당신에게 약속드립니다."

만약 박근혜 정부에서도 브리지워터의 반 만큼이라도 투명함과 정직함을 추구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대통령이 탄핵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비선실세의 정체는 오래전에 드러났을 것이고 힘을 잃었을 것이다. 물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건 박근혜의 탓이 가장 크다. 그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내쳤다. 진실에 벌을 주는 자는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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