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올림픽에서 미국의 높이뛰기 선수 딕 포스베리가 막대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를 지켜보던 관중은 깜짝 놀랐다. 포스베리가 등 쪽으로 누운 채 막대를 넘는 ‘배면뛰기’를 역사상 처음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포스베리 이전에는 아무도 이렇게 뛰지 않았다. 당시엔 모두 옆으로 막대를 넘는 ‘가위 뛰기’를 했다. 포스베리는 올림픽 신기록(2m24cm)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 신기록을 6cm나 높였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슈퍼비전’팀이 세계 최대 이미지 인식 경연대회 ‘ILSVRC(ImageNet Large Scale Visual Recognition Challenge)’에 처음 출전했다. ILSVRC는 2010년 시작한 대회다.각 팀의 인공지능이 여러 이미지가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 맞추고 그 오답률의 낮음을 겨룬다.
슈퍼비전팀은 영국 옥스퍼드대, 일본 도쿄대, 독일 예나대, 제록스 등의 유명 연구기관이 개발한 인공지능을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며 우승했다. 다른 팀이 오답률 26%대에서 소수점 공방을 벌일 때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기법을 사용한 슈퍼비전팀은 15%대를 기록했다. 50여 년 역사를 가진 AI의 혁신을 불러온 딥러닝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딥러닝은 AI를 학습시키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한 종류다. 인간의 뇌는 학습 과정에서 여러 신경세포를 형성하고 서로 연결해 ‘신경망’을 만든다. 딥러닝은 사람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유사한 인공신경망을 이용,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ㆍ추론하고 스스로 학습한다. 기존 AI는 인간이 일일이 규칙을 정해줘야 했다면, 딥러닝은 입력된 정보 간의 관계를 분석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직관’의 길이 열린 셈이다.
딥러닝은 슈퍼비전팀을 이끈 토론토대 제프리 힌튼(69ㆍ사진) 컴퓨터과학과 교수가 2006년 처음 창안한 개념이다. 그의 딥러닝 덕분에 AI 연구는 뚜렷한 연구혁신을 내지 못한 1990년대의 ‘겨울’을 지나 21세기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구글의 음성인식ㆍ번역, 페이스북의 사진인식 등 최근 AI의 대부분이 딥러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힌튼 교수는 현재 구글의 석학 연구원(Distinguished Researcher)도 겸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반까지는 대학 연구실에서, 오후엔 20여 분 거리에 있는 토론토 구글지사에서 2시부터 6시까지 인공지능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 1년 중 2~3달은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에서도 일한다.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중앙일보와 중앙SUNDAY가 e-메일을 통해 그와 만났다.
(1970년대와 90년대에 AI 학계는 긴 겨울을 나고 있었다. 1950년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AI가 인간을 대신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간단한 문제는 풀려도 복잡한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89년 프랑스의 얀 르쿤 박사가 손으로 쓴 우편번호를 인식하는 심층 신경망을 개발했지만, 숫자 10개를 인식하는 데 사흘이 걸릴 정도였다. 이후 AI 연구에 대한 열기는 급속히 식었다. 힌튼은 주위 사람들에게 “AI는 공상과학소설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걸 연구하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6개월만 줘봐요.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할 테니까”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힌튼은 60년대 말 영국 케임브리지대 학부에서 실험심리학을 전공했다. 뇌가 신경세포 사이의 전기신호를 통해 작동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여전히 뇌가 어떤 원리로 학습하고 지성을 얻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에든버러대에서 인지과학의 창시자인 크리스토퍼 롱게-히긴스의 지도 아래 인공지능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78년 학위를 끝낸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 인공지능 연구 지원이 끊겨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힌튼은 82년부터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의 인공지능 연구가 군사자금을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에 갈등했다. 자신의 연구가 군사적 목적에 사용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제자들을 굶길 수도 없었다. 마침 캐나다의 토론토대에서 교수직 제안이 왔다. 힌튼은 87년부터 지금까지 토론토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 90년대 인공지능의 겨울은 춥고 길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연구지원도 차츰 끊겼다. 연구자들은 하나 둘씩 인공지능 학계를 떠났다. 힌튼 교수처럼 인공신경망을 연구하는 학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힌튼은 2004년 캐나다고등연구원으로부터 10년간 500만 달러를 지원해준다는 약속을 받아 AI 연구를 빠르게 진전시킬 수 있었다. 2006년 발표한 딥러닝 논문은 그 결과물이었다.)
(힌튼은 구글에서 석학연구원(Distinguished Researcher)으로 일하고 있다. 주된 역할은 그간 기술의 발전으로 실현 가능성이 커진 여러 AI 이론을 제품 개발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가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40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컴퓨터 성능의 한계로 실현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커즈와일 역시 구글에서 인공지능 연구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일하고 있다.)
힌튼은 기초과학을 현실에 응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최근과 같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이유도 어떤 이론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대학에 연구지원을 할 때, 그 목적을 ‘응용’에 맞추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은 일자리 창출과 이익 확대를 위해 연구투자를 결정하지만, 사실 뜻밖의 큰 이익을 내는 건 호기심 그 자체가 목적인 연구라는 것이다. 힌튼은 대학은 기초과학에, 기업은 응용분야에 몰두하는 게 맞다고 얘기한다.
힌튼은 1947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나눈 대화가 계기였다. 친구는 힌튼에게 “뇌는 홀로그램처럼 작동한다”고 말했다. 홀로그램이 무수히 많은 레이저광을 반사해 형상을 만드는 것처럼, 뇌 역시 기억을 한 곳에 두지 않고 거대한 신경망으로 퍼뜨린다는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는 어린 힌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는 평생 뇌의 비밀을 연구하는 학자가 됐다.
힌튼은 학자 집안의 ‘엄친아’이기도 하다. 컴퓨터 과학의 기원이 된 ‘기호논리학’을 만든 영국의 논리학자 겸 수학자 조지 불(1815-1864)의 외고손자다. 할아버지는 영국의 외과의사 겸 작가 제임스 힌튼, 아버지는 곤충학자 하워드 힌튼이다.
40년 인공지능 외길.. 결실 맺어....
햐....
http://moontak.cafe24.com/?sort_index=readed_count&order_type=desc&document_srl=10758&mid=mind_board
퍄퍄 머시쪄
그런데 인류가 인공지능 땜에 망하면 미래에 최초이자 최악의 악마소환자라고 불릴지도 모르겠다 ㅋㅋ
ㅋㅋ
이런 류의 인터뷰들은 마지막이 꼭 "한국의 연구가 선진국이 되려면...." "기초 연구에 집중... 성과보다는 과정..."이런게 있드라
학계에서금지어가되다시피했던신경망계속잡고있었던건만해도사실이게엄청힘든일이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