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감각적인 첫 문장은 독자를 설레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 칼 마르크스가 1848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의 서문은 그런 흡입력을 주는 예 중 하나다. 이 역사적인 글은 이렇게 자기 존재를 알린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책처럼 아이덴티티 디자인 또한 첫인상이 생명이다. 대중이 가장 먼저 접하는 브랜드의 얼굴 아니던가. 세상 모든 브랜드가 큰돈을 투자해 세심한 부분 하나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로고에서는 형상을 양식화한 심볼 뿐 아니라 서체 또한 무척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체의 미묘한 곡선과 직선의 교차만으로도 수많은 느낌을 직접, 혹은 은유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심볼 없이 글자만으로 구성한 '로고 타입(logo type)'을 떠올려보면 서체가 만들어내는 묵직함이란 결코 무시하기 쉽지 않다.
1980년대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에 얻어맞긴 했지만, 글자 끝에 돌기(Serif)가 없는 산세리프(Sans Serif) 서체의 인기는 21세기 로고 디자인 세계에서 여전하다. 특히 ICT 업계가 바치는 끊임 없는 구애의 격렬함은 놀랄 정도다. 한 번 가만히 생각해보시라. 우리 삶에 깊게 침투하는 브랜드 중 우아한 돌기로 제 매무새를 마무리한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는지. 그 몇 안 되는 희귀한 예였던 구글마저 얼마 전 17년 만에 로고를 리뉴얼하며 로고 타입 서체를 산세리프로 확 바꿔버렸다. 세리프는 이제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칼 마르크스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가령 이렇게 말이다.
"하나의 유령이 로고를 배회하고 있다. 산세리프라는 유령이."
구글 로고 리뉴얼 전(위), 리뉴얼 후(아래)
산세리프가 굳건한 인기를 유지하며 존속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명징하고 명료한 가독성과 중립적인 성격, 그리고 현대적인 이미지 덕분이다. 전 세계를 휩쓸었던 20세기 중반과 딱히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 저변에는 일련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로고를 구현하는 매체가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확장하면서http://www.huffingtonpost.kr/harry-jun/story_b_82452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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