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식량생산량과 현대를 비교해 보면,


과거인으로서는 지금이 특이점 시대처럼 보일 것이다.


이미 식량생산량은 전세계 사람들을 먹이고도 철철 넘칠만큼 생산이 되는데,


남아 넘치는 것을 가져다 주는 약간의 비용 때문에 남는 음식들은 쓰레기통으로 가거나 하다못해 발전기를 돌리거나 비료로 쓰지, 최빈국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는건 극히 일부다.


이것은, 인간의 평균적인 선의의 한계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 아닐까?



우리는 돈이 돈을 낳는 시대에 살고있지.


3D프린터가 3D프린터를 낳은들 이상할건 없다.


분명 혜택볼 사람도 있겠지.



식량생산량 증가의 이득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누리지만, 그것은 농업을 그만둔 사람들이 공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이전보다 큰 생산력을 가지게 되어 대접받는 기회도 늘어난 특권이었다.


하지만, 육체노동을 넘어 정신노동마저 자리를 빼앗긴 인간은 더이상 생산력이 없다.


기여가 있어야 보상이 있는 인간사 수만년의 논리가 하루아침에 깨지긴 힘들기 때문에,


생산력이 없는 인간이 발전의 혜택을 얻는데에 무슨 기여를 했느냐고 되물으며 기술의 혜택을 박탈하는 사회를 거쳐가는건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지금 현대가 그렇듯이, 생산력을 빼앗긴 인간은 가진 사람의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소모될 여지가 크다고 본다.


법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의 횡포를 대놓고 부리지 못할 뿐, 인간의 심신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쏙 빼먹는데에는 지금보다 발전된 시대가 역사속에 있던가?



아무리 생산력이 발전한다 한들, 인간은 끝없는 욕망을 가진 동물이고, 끝없는 소비를 할 것이다.


말하자면, 힘을 가진자가 지구 한구석을 예술품으로 가공할 지언정, 갈곳이 없는 사람을 그곳에 들이고 말고는 순전히 그의 권리로 인정하겠지.


그것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감을 잡기도 힘든, 인간 사회의 유구한 전통이었으니까.



예전처럼 나라가 무너지고 새로 생기면서 사회구조를 바꾸고 분배구조를 바꾸는 사건도, 발전된 사회일수록 좀처럼 일어나기가 힘들다.


발전된 수단을 바탕으로, 인간을 보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사람들도 넘쳐날 것이다.


당장 우리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자. 이용당하는 사회의 약자들조차 기회가 난다면 남을 자기만족의 도구로서 이용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현실이다.



특이점 주의자들 생각처럼 특이점만 오면 그 순간부터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특이점이 오고나서, 더러운 꼴을 한창 보고 나서, 그때까지 인류가 남아 있다면, 그때 가서야 유토피아가 온들 이상할게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