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고위
임원을 거친 A씨가 중화권 업체들의 의뢰를 받아 국내 기업들의 인력을 빼내오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대만에 아예
반도체 컨설팅 회사도 차려 놨었죠. 사실 이 기사가 나오기 전부터 A씨는 업계 여기저기서 잘 알려진 유명인사(?)였습니다.
중국의 한국 반도체 인재 빼가기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얘기죠. 연봉을 3배를 준다, 10배를 준다더라 하는 소식은 더 이상
신선한 뉴스 소재가 아닌 듯합니다.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정부, 기업 차원의 노력도 이전에 비해
구체화되는 모양새입니다. 왜 우리나라 인력이 중국기업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인데요.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같은 당사자들은 승진과 연봉 등 처우 개선을 통해 인력을 최대한 잡아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수사기관을 통해
기술 유출에 대한 감시도 강화하고 있죠. 은퇴한 기술자들에게 재취업 기회를 확대하고, 맞춤형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취업, 처우 개선, 정부 지원과 같은 대응책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반도체 인력 빼가기가 비단
우리나라 업체들만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같은 언어권에 속한 대만 업체들은 더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장강메모리로 합류한 찰스 카오, TSMC에서 SMIC로 이적한 장상이, 칭화유니에 합류한 UMC CEO 출신 순스웨이. 이들 모두
대만 반도체 업계에서 한자리씩 했던 인물들입니다.
고위 임원뿐만 아니라 실무 기술인력을 아예 팀
단위로 빼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올해 2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계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중국 상하이 화리가
대만 UMC로부터 28nm 공정 관련 핵심 기술인력 50여 명을 한꺼번에 빼내 간 사건이 중화권 반도체 업계에서 큰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가뜩이나 파운드리 업계에서 TSMC나 삼성, GF에 밀려 고전하고 있던 UMC는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28nm 공정 핵심 기술인력을 팀 단위로 빼앗기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반면 인력을 빼내간 상하이
화리는 무명의 신생 파운드리 업체임에도 반도체 대기업들로부터 안정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대만 매체 차이쉰솽저우우칸(财讯双周刊)이 "대만이 대륙 반도체 업체들의 인력 공급원이 되고 있다"며 백여 명의 엔지니어들이 대륙으로 넘어간 내막을 폭로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올해 춘절(중국 음력 설)을 전후하여 대만의 D램 제조업체 이노테라에서 백여 명에 달하는 엔지니어들이 단체로
중국의 장강메모리와 허페이창신 등으로 넘어갔습니다. 이 중 일부 직원은 회사의 기밀 자료를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져 정부
조사국에서 공장 구역까지 진입, 기술 유출 여부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도 모 중국 낸드 업체가
유출된 마이크론의 레시피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였다는 소문이 돌았었습니다)
이 기사에는 대륙 업체들의
대만 엔지니어 스카우트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대만 엔지니어 명단을 입수한 후, 전화나 웨이신
채팅 그룹을 통해 1:1로 스카우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기사를 통해 보면, 인력을
빼가려는 대륙 업체들의 연락처가 이미 대만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대만 D RAM 업체 이노테라를
인수한 마이크론도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칭화유니와 허페이창신에 공식적으로 경고함과 동시에 내부 단속에 나선
상태입니다. 올해 3월 마이크론은 이노테라 직원들에 대한 급여 인상을 실시하였는데, 인상폭이 30~50%에 달했다고 합니다.
또한 4월에는 기술 유출 건에 대해 정부와 공동으로 조사가 진행 중임을 공식 인정. 우회적으로 내부 직원들에게 대륙 업체로의 기술 유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인력을 빼가기 위한 대륙 업체들의 작전(?)을
보면 한때 "달빛 관광"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었던 우리 반도체 업계의 과거가 연상됩니다. 80년대 삼성전자는 반도체 핵심기술
확보하기 위해 은밀하게 해외 기술자들을 초청해 기술을 배웠습니다. 일본 기술자들이 금요일 저녁 비행기로 들어왔다가 기술을 전수하고
일요일 오후에 들어간다고 해서 "달빛을 보며 왔다가 달빛을 보며 돌아간다"는 상황을 빗대어 만들어진 말이죠.
미국에서
시작된 반도체 기술은 일본에서 꽃을 피웠고, 이렇게 다시 한국으로 넘어와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술이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산업의 주도권도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그 흐름의 주체가 바로 사람인
것입니다.
지금 중국 반도체 업계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은 과거 실리콘밸리로 유학을 떠났다가 현지에 남아 미국 반도체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국인 엔지니어들입니다. 또한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를 위협하고 있는 BOE의 핵심기술 역시 BOE가 인수한 하이디스 인력들이 기초를 닦아준 것입니다. 중국 업체에 가면 2~3년이면 단물 다 빨리고 버려진다는 통념과는 달리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BOE는 당시 하이디스 출신 한국인 엔지니어들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된 중국 업체들의 인력 빼내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인력의 이동은 더욱 거세어질 것이며, 이를 인위적으로 막는 것은 흘러내리는 물을 손으로 막으려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반도체의 고향인 미국에서는
http://blog.naver.com/china_lab/221042343475





팀단위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