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창] KAIST 첫 공고 출신 입학생의 죽음 …좌절 감싸지 못한 '교육의 좌절'

[미디어오늘 김창룡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자살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절망하는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자살율을 기록하는 한국에서 그 많은 자살자의 수와 유형에 어찌 차별이 없을 수 있을까마는 어린 학생의 죽음은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의 가슴을 때리는 법이다. 더구나 카이스트같은 훌륭한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이 제대로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차원에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숨진 A군은 2007년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한국 대회에서 대상인 과학기술부 장관상을 받은 데 이어 2008년에는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세계 대회에서 3등에 오르는 등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로봇 경진대회에 60여차례 참가해 뛰어난 실력을 보여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과학경진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는 등 '로봇박사'로 불렸던 A군은 인문계고교를 다니다 로봇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에 로봇 기능 전문계고로 전학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재능덕분에 카이스트에 합격한 A군은 특히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미적분학을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1학년 성적에 학사경고를 받을 정도여서 고민이 상당했다고 한다. 특히 영어는 한두학기만에 갑자기 성적이 오르는 과목이 아니어서 그의 갈등과 절망은 더욱 깊었으리라.

A군은 로봇분야에 관한한 매우 뛰어난 소질과 잠재력을 보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 영어로 미적분학을 수학하라고 지도한 것이 과연 적합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특정분야에 비범한 재능을 보인다고해서 영어강의를 수강할 정도의 수준을 갖췄다는 것은 아니다. 특별 재능을 가진 아이는 그 분야에서만 독특한 능력을 보였을 뿐 타분야는 평균이하일 경우도 종종 있었다. 미국의 유명 영화 감독 스필버그나 발명왕 에디슨 등도 학교 수업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못했거나 부적응자였다고 한다. 빌 게이츠의 경우 하버드 대학을 스스로 중퇴했을 정도였다. 타고난 천재성을 제대로 지도, 관리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를 한국에서 종종 목격한다.

특별한 학생은 의외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좌절과 갈등에 쉽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동차 경주 선수들은 차를 빨리 모는 법을 배우기전에 사고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하는 가를 먼저 배운다고 한다. 승리하는 법을 배우기 이전에 실패에서 탈출하는 법을 먼저 익히는 방식이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에게 일상의 좌절과 갈등, 실패에서 먼저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체험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리라. 그들에게 '성공' '일류대'를 외치기전에 작은 좌절과 실패를 먼저 경험하여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급선무다.

A군에게 카이스트의 선택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공고생 최초로 카이스트에 합격했을 때


http://v.media.daum.net/v/20110111141514396#none


KAIST의 '못다 핀 로봇박사' 글을 쓴 후..

로서의 반성과 다짐 그리고 어느 만학도의 눈물겨운 고투 이야기

[미디어오늘 김창룡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며칠 전 '못다 핀 로봇박사'라는 제목의 글을 쓴 후 많은 댓글과 함께 메일로도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전해왔다. 일일이 답변하지 못했지만 성의있는 답변 및 추가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다시 자판기를 두드린다.

'못다 핀 로봇박사'는 대학기관과 교직자들에 대한 반성과 어린 학생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에서 또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관점에서 정리했다. 나는 그의 애틋한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않다. 내가 강단에서 경험한 특이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지않다고 생각하는 한 사건을 소개하는 것으로 메시지를 대신하고자 한다.

때는 4년전, 대학 1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때였다. 또래 학생들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듯한 한 만학도가 열심히 내 강의를 듣고 있었다. 90여명이 듣는 강의라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지만 그는 늘 맨 앞 똑같은 자리에 출석하는 성실함을 보였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쪽지시험, 중간고사 등을 점검한 후 이 상태로 계속 되면 F 학점을 받게 될 학생들을 내 연구실로 따로 불렀다. 질책을 하기전에 먼저 사정을 알아보고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대략 17명으로 기억한다. 여기에는 그 만학도가 포함돼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각, 그는 16명이 모두 다녀간 뒤 맨 나중에 내 연구실로 들어왔다. 그와의 대화를 직접 화법으로 옮겨본다.

"왜 불렀는지 아십니까?""아이고, 교수님에 저도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는데, 시험볼 때는 기억이 안나서 답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심더...""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요?""...(매우 겸연쩍은 표정으로)...58세입니다.""......"

나는 잠깐 할 말을 잊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2011년 현재 60대이지만 실제로 매우 젊어보인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를 다시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연세에 대단하십니다. 배우겠다는데 나이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학점 너무 걱정마시고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해주세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 교수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젊은 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대학교라는 곳을 오기까지 얼마나 고민과 갈등이 컸을까를 생각하며 그렇게 답변한 것이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함빡 웃음을 선사하며 내 연구실을 나갔다. 그 일이 있은 지 꼭 일주일 후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예, 오늘 점심식사 함께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이미 다른 사람과 점심약속이 잡혀있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웬지 내가 거절하면 다시는 전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네 가능합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그는 내연구실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검은 색 에쿠스 승용차를 몰고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