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wUEYPnJunY4&list=PLPulIMaFNb30kz_aIZ_iSLIrW_drtdExr&index=18


임나일본부 를 증명하는 유물 유적


광개토비 : 4세기 말에서 5세기 전반에 백제 가라 동한 임나 신라가 왜군의 신민이

되었다고 적고있다.





청주 신봉동유적(청주박물관, 1990.충북대학교박물관, 1995)
신봉동유적에서는 토광묘 229기, 횡혈식석실묘 3기, 화장묘 15기 등 247기가 발굴조사되었는데, 백제지역의 여타 고분군에 비하여 마구와 무기의 부장비율이 높은 편이며, 그 중 90B-1호와 92-2호 2기의 분묘에서 갑주류가 출토되었다.
90B-1호는 토광묘로 동반유물로는 뚜껑 2점과 배신 4점 그리고 두립문이 있는 연질 직구호 등 일본 須惠器 유사품과 장경식철촉 다수, 2단 만입 무경식촉 등이 있다. 삼각판 정결판갑의 後胴部와 右前胴의 일부, 그리고 어깨부분에서 윗 팔뚝 에 드리우기 위한 錣편이 남아있다. 삼각 지판 크기는 크고, 전동부 지판 배치는 장고형을 띤다. 이는 가야지역 삼각판갑계통의 지판배치가 대체로 능형을 띄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9) 못머리가 크고 연결못의 수량도 적은 늦은 요소이다. 개폐 장치는 정결판갑일 때 우동개폐가 일반적인데, 이 유물은 협부 중 남아있는 우협 에 개폐장치가 없어 좌동개폐이거나 개폐장치가 없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연대 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일본 스에키와 이단만입철촉 등을 고려하여 5세 기 후엽에서 6세기 초의 어느 시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92-2호는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한 횡혈식석실분으로 내부에서는 만곡종장판주 가 단경호, 성시구, 관정과 꺾쇠 등과 함께 출토되었으며, 이 외에도 신라토기인 부가구연장경호가 있다. 만곡종장판주는 하연이 둥글게 처리된 지판으로 이루어 졌으며, 최대폭이 약 4cm에 이르는 것으로 보아 20매 내외를 조합하여 冑體를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볼가리개와 수미부가리개의 소찰도 함께 있다. 지판의 투공배치는 복발과 연결 을 위해 상단부에 3개, 지판 간 연결을 위해 3단으로 2공1조의 투공이 있고, 지판
군사활동을 위해 한반도로 진출한 倭人의 足跡으로 보는 견해(酒井淸治, 1993)




권태호 함평 신덕리 유적(국립광주박물관, 1995)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에 위치하는 전방후원분으로 인근에 만가촌고분군, 석 계고분군이 있다. 매장주체부는 구주계 횡구식석실이다. 출토갑주는 찰갑, 종장판 주, 소찰주가 있다.  찰갑은 일본에서만 확인되는 수결1열과 2열이 함께 한 병용형으로 동반유물, 묘제 등으로 보아 일본제 찰갑일 가능성이 높다.(森川祐輔, 2008)



광주 쌍암동유적(전남대학교박물관, 1994)
영산강 서안의 넓은 충적평야에 의치하는 석실분으로, 인근에 월계동 장고분 이 위치한다. 석실 내부에서는 찰갑 외에도 개배, 유공광구소호, 마구, 대도가 있 고, 가운데에 倭鏡의 일종인 珠文鏡이 출토되었다. 찰갑은 동찰과 요찰, 도련찰까 지 있어 전체적인 형상을 비교적 잘 짐작할 수 있다.(<표 3> 참조)
특히 일부 소찰에서는 수결1기법이 남아있다. 소찰 평면형태는 상원하방형이며 네 개의 유형으로 나뉜다. 1은 규격 10×4.4cm의 평찰로 수결1(2)열, 횡결2(2), 하 닉2공이다. 2는 11×4.4cm크기의 평찰로 1보다 약간 크나, 수결1(2)열에 3수결 공이 있고, 횡결2(2)-2(2), 하닉2공이다. 3은 단면Ω형이며, 수결1(2)열, 횡결 2(2)-2(2), 하닉2공이다. 규격이 20×4cm로 한반도 출토 찰갑 소찰 중 가장 크 다.12) 4는 도련찰로 단면 Ω형이며, 투공배치는 1과 같다. 규격은 10.5×4.4cm 이다.
쌍암동고분은 원형의 봉분이며 내부에 구주계 횡혈식석실의 가능성이 높으며, 6세기 전엽의 왜계 찰갑의 전형적인 요소 고흥 안동유적에서 출토된 왜계 판갑





고흥 안동유적(전남대학교박물관, 2011)
전남 남해안에 돌출한 고흥반도 내에 팔영산과 마복산 사이에 깊숙이 형성 된 해창만 가장 안쪽 구릉 위에 위치하고 있다.



원형분구묘로 매장주체부는 수혈식 석곽묘로 축조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장 방판혁철판갑, 차양주 2점, 견갑과 철 부속구, 금동식리와 관모, 살포, 連弧文 鏡, 환두대도 등이 있다.
장방판혁철판갑은 앞부분을 여미는 인합판이 없고, 협부 지판은 阪口의 분 류에 의하면 I식과 II식이 혼합된 상 태이다. 이는 일본 고분 편년으로 4세 기 말에서 5세기 초에 해당한다. 판갑 의 외연은 혁조복륜으로 처리하였다.
〈그림 3〉고흥 안동고분 장방판갑
차양주 A는 소찰병유차양주로 伏鉢, 管, 受鉢을 각각 別造하였다. 이 관은 복 발과 수발 중앙의 원형 구멍을 통해 삽입하여 3갈래로 만들어 복발 내부에 접합 하였다. 주체는 2단의 소찰 지판을 伏板, 胴卷板, 腰卷板 사이에 배치하여 못으로 고정하였다. 차양은 弧狀으로 넓게 돌렸으며, 외연 안쪽에 3단의 투조문양대를 돌렸다. 차양주 B는 복판과 관, 요권판과 함께 3단의 볼가리개만 남아있고 주체 는 가죽으로 제작되어 남아있지 않다.

김영민은 이 안동고분 출토 갑주들을 왜계로 인정하고 제작시기는 5세기 전엽 에서 중엽에 해당하나, 부장시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로 파악하였다. 이러 한 시간적인 간극은 역사기록의 정황상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가 남해안을 확보 하기 위해 대가야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지역정치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금동 위세품을 분배하는 시기가 그때이기 때문이다.(김영민, 2010) 이 고분에서는 출토 한 연호문경도 제작시기는 후한의 熹平三年(174)명 연호문경과 유사하여 2세기 중후엽(이양수, 2010)으로 보나, 이 시기까지 전세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이와 관련하여 鈴木一有는 갑주에 투영된 전통에 대한의 인식은 ‘古式’이 열등한 것이 아니라 전통성을 강조한 의례적 관념이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鈴木一有, 2008)



여수 죽림리 유적(마한문화재연구원, 2008)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일대 해발 50∼70m 구릉성 산지에 위치한다. 이 고분 군의 특징은 가야와 백제 무덤이 한 고분군 내에 혼재해 있다는 점이다. 갑주가 출토된 10호 분은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로 동반된 유물도 가야계 대부직구호, 대 부완이 있으며, 장경식철촉, 철제낚시바늘 등이 있다.
판갑은 정치된 상태에서 토기유물군과 함께 부장되었는데, 상부가 결실되었다. 파괴된 상태에서도 형태를 잘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횡장판정결판갑으로 보이며, 자세한 사항은 보존처리 중이라 알 수가 없으나 동반유물로 볼 때 5세기 후엽으 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전남 해안가인 해남 외도 1호 분에서 삼각판혁철판갑 편이 출토되었다.
차. 장성 만무리유적(국립중앙박물관, 1999)
영산강 상류인 장성은 광주, 함평, 나주, 담양과 인근에 있으며, 강을 매개로 하여 왜와의 교류가 활발하던 지역이다. 만무리에서는 횡장판정결판갑 후동부 일 부 편이 출토하였다. 동반된 유물에 삼환령과 대도가 있다. 주변에 위치한 담양 제월리유적, 광주 쌍암동유적 그리고 삼환령이 출토된 일본 江田船山古墳의 연대 와 비교해 6세기 전엽으로 추정된다.









(광개토 당시 야마토 정권 군인들이 타고다니던 군함 '고야부네'를 조각한 야마토 정권의 하니와 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