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기자가 요서 지방으로 와서 중국의 발달된 청동기 문화를 산융,고죽,영지,도하 라는 요서의 여러 북방오랑캐 부족들에게 




전파한 이후 부터  요동에 이웃하던 고조선도 청동기 문화의 전파를 받아 비파형동검이나 Z자무늬청동거울같은 청동기를 쓸줄 알게 되었다. 








고조선은 기자 때로부터 40여세대 이후 중국의 전국시대 시작 즈음 기원전 5세기에 




고조선의 왕 역시 왕을 칭하며 중국의 전국의 여러 나라 처럼 나라 시스템을 다듬고 




베이징의 연나라랑 전쟁을 준비했다.








고조선은 연나라의 국경을 위협하는 동호東胡라는 북방 오랑캐와 나란히 연나라에게 위협적인 존재 였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비파형동검이 제일 많이 출토되는 요서인지,




아니면 탁자식고인돌이 밀집한 요동인지 , 아니면 탁자식 고인돌이 밀집한 평양인지는 




지금까지 흥미로운 논쟁이 되고있다. 








기원전 4세기 후반 연나라가 동호를 치고 고조선의 서부 영토를 치며 2천리를 먹으면서




고조선은 안시성 근처 '문,번한'이란 지역에서 연나라와 국경선을 새로 긋는다.




고조선은 연나라와 FTA조약을 체결하고 연나라인의 요동~청천강 사이 이주와 연나라 군사의 요동 양평성 주둔 ,




연나라 화폐의 사용을 허락한다. 그후 고조선은 쇠약해져갔다. 








진나라에게 밀린 연나라가 요동으로 중심지를 옮기면서 고조선은 중심지를 황해도 진번국의 구월산으로 옮겼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조선 지역에까지 만리장성을 지으면서 




고조선 왕은 황해도 산 속에 칩거해 진나라에 저항했다. 




연나라에게 잡혀 제나라 연나라 조나라 등지로 흩어진 고조선인들은 만리장성 공사에 동원 당하고




중국인들과 피가 섞인다.




만리장성은 돌로 짓기도하고 진흙으로 짓기도하지만 목책으로 떼우기도한다. 








요동,청천강에 지어진 진나라의 만리장성은 상,하로 이중으로 된 목책요새같은 것으로 당시에 '상하장'이라고 불렸다.








진나라가 항우 진승의 난으로 망해가자 중국 피가 섞인 고조선인들은 평양의 조선으로 돌아온다.




한나라 초기, 연나라 사람 위만은 중국 순혈 난민들을 데리고 상하장의 사이에 거주하면서 협객 무리를 조성했다.




위만 깡패무리는 고조선으로 와서 고조선 왕에게 충성하는 척 하며 한나라의 요동태수와 밀약을 맺고는 반란을 일으켜




친중국 정권을 세우고 사방으로 고조선 부족들을 침략해 노예로 삼는다. 




고조선인들과 중국 피가 섞인 고조선인들은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꺼이꺼이하며 골짜기,계곡을 넘거나 배를 타는등 피난민이 되어




경상도,전라도에 정착해 '진국'이란 나라를 세운다.








이후 진국은 변진과 변한과 진한으로 나뉜다. 








한강 유역에는 고조선인과 선조가 같은 마한 사람들이 살았는데. 마한 사람들은 고조선인의 이주를 허락했다. 




하지만 고조선인들이 진나라 말을 쓰고있어서 그들과 같은 지역에 살길 싫어하고 경상도,전라도에 꺼져있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