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는 쩔쩔매는 표정을 지었다. 550m나 되는 초고층 빌딩에서의 저녁 식사라는 건, 진짜로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저, 선생님? 굳이 저 까마득한 높은 빌딩에서 저녁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뭠까?"


"너만을 위한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 플랜의 최종장이기 때문이지. 어서 가자, 이치카.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선생님, 좀만 더 심사숙고해 주십쇼..!"



지하 1층 서울스카이 매표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표를 끊는 것은 약간 순조로웠다.


우린 롯데월드 타워의 건립 과정 등을 보여주는 넓적한 통로를 지난 후 직원의 사진 촬영 관련 안내를 받았다.



"서울스카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시기 이전에 사진 촬영 이벤트가 있겠습니다.


발자국 모양에 맞춰 서 주시면 됩니다. 그럼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첫 번째 사진은 그냥 서 있는 포즈고, 두 번째는 포즈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이때 이치카는 약간 삐진 표정으로 내 볼을 꼬집었는데, 진짜 한쪽 볼이 늘어난 것 같았다.



"아파라.. 이치카, 너 아직도 삐졌니?"


"당연하잖슴까. 전 높은 데가 친숙하지 않단 말임다. 특히나 550m나 되는 고층 빌딩은 처음이라고요."


"그래도, 날개가 있어서 추락할 염려는 없잖니."


"뿌우...! 저 긴장되는데 놀리지 말아 주십쇼..!"


"미안, 미안. 그래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진짜 멋질걸?"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드디어 엘리베이터 안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치카의 표정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나는 설레임을 숨기고 이치카를 계속 안심시켰다.



"걱정 마, 이치카. 나도 어렸을 때 너처럼 꽤 긴장을 많이 했었거든.


엘리베이터가 꽤 빠르게 올라가니깐 준비 단단히 하렴."


"많이 긴장되긴 함다만.. 최대한 참아 보겠슴다."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우리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빠르게 상승했다.


올라가는 짧은 시간 동안 서울의 랜드마크를 보여주는 3d 화면이 나와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117층에 도착하자 직원이 서울스카이 입장 영상을 볼 수 있는 스카이 시어터로 안내했다.


영상에서는 수묵화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파트랑 SF 분위기에 수많은 빛들이 롯데월드 타워로 모이는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화 스크린이 걷히자...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선생님의 고향인 서울의 야경이라고요...?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슴다.."


"그치? 나도 처음 봤었을 땐...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어. 내가 서울의 명소들을 알려줄게. 가자."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야경은 마치 밤의 검은색 바탕에다 형형색색의 불빛들로 가득 채워진 것 같았다.


나는 이치카와 함께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복도를 따라가며 감상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여기서 서쪽 방향이야. 여기 아래는 롯데월드 어드벤처라는 놀이공원이야.


매우 유명해서 서울 사람들이 이 놀이공원 모르면 거의 간첩이지."


" 와, 신기함다! 외딴 섬 같은 곳에 유명한 놀이공원이 있다니.


게다가 다리 하나로면 이어져 있네요. 선생님, 다른 야경들도 보러 가요."



나와 이치카는 남쪽 방향 전망대로 향했다.



"저곳은 37년 전 올림픽이 열렸었을 때 사용했던 경기장들이 있는 올림픽 공원이지.


너 몇 달 전 황륜대제 기억나니? 그때 응원과 함성이 어마무시했잖아."


"아, 그때 하스미 부부장님께서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였었죠. 결국 게헨나가 우승했다며 굉장히 아쉬워하셨습니다."


"맞아. 그래서 내가 침울해했던 하스미를 달래 줬지. 기억이 자꾸만 나네."


"선생님, 아직 구경거리가 많이 남아 있잖슴까. 어서 가자고요!"


"잠깐, 너무 빨리 갈 필요 없어. 폐장 시간까지 많이 남았잖니. "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18층으로 올라가자 스카이데크라는 곳이 있었다.



"이치카, 여기는 스카이데크라는 곳인데, 바닥이 강화 유리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지.


굳이 바닥을 보려 한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보지 않는 걸 추천할게."


"이유가 뭠까?"


"너무 무서워서 혼이 빠져나갈 정도거든."


"과장하진 마십쇼. 그렇게 무섭진 않을..... 꿀꺽..."



이치카의 눈이 동그래졌고 이마의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너무.. 무섭슴다.. 어서 다른 곳으로 가요.."


"그러게 내가 뭐랬어..? 여긴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들은 거의 지옥이지. 어서 121층으로 가서 사진부터 찾자."



121층으로 가서 사진을 구매하고 확인해 봤더니 내 표정이 정말 우스꽝스러웠다. 이치카는 보자마자 폭소했다.



"푸하하! 선생님 표정이 정말 우스꽝스럽게 나왔슴다! 배꼽이 빠질 것 같슴다..!"


"야! 네가 내 볼 꼬집어서 그런 거잖아! 넘 아팠다고."


"크흠. 제가 그땐 선생님한테 약간 삐졌었다고 얘기했잖슴까. 선생님, 저녁을 먹을 곳은 어딤까?"


"딱 맞는 곳이 있지. 일단 저 엘리베이터를 타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곳은 서울스카이의 고급 레스토랑인 라운지123 이었다.



"이곳은 음식 가격이 비쌀 텐데, 정말 괜찮으신 검까?"


"말했잖니. 이것도 널 위한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 플랜이라고. 게다가 너만 아는 비밀인데, 최근에 복권 3등에 당첨되었거든.."


"그렇슴까? 어쨋든 정말 감동임다, 선생님... 심장이 두근두근 할 것 같슴다."



우린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은 다음, 알등심 구이 2개와 닭날개&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자, 올해도 고생했어, 이치카. 많이 먹으렴."


"감사함다, 선생님. 맛있게 잘 먹겠슴다!"



음식은 역시 맛있었다. 스테이크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난 중간에 이치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흘깃 봤는데, 정말 사랑스러웠다.


음식을 거의 다 먹었을 때 이치카가 스테이크 조각을 들면서 날 불렀다.



"선생님, 이건 선생님을 위한 선물임다. 입 벌리세요, 아~"


"고마워, 아~"


"어때요? 맛있슴까?"


"당연히 맛있지. 정말 고맙다. 너도 한 조각 줄까?"


"괜찮슴다, 선생님. 저 거의 배가 부를 것 같슴다. 마음만은 감사히 받겠슴다."



저녁을 다 먹은 이후 우리는 의자에 않아 배경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이때 내가 이치카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이치카,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잖니. 그래서 그동안 쌓인 마음 속 응어리들을 속 시원히 털어놓는 거 어때?"


"흠, 나쁘지 않은데요? 그럼 선생님께서 먼저 시작하시는 검다."


"자, 그럼 시작할게."



나는 이치카에게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렇게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란다.


내가 이 세계로 오기 전의 나는 순진했고 사교성도 거의 없었으며 가족과의 사이도 아주 원만하진 않았어.


특히 아버지와는 성격도 가치관도 궁합이 최악이었지. 그 때문에 크게 다퉜던 적이 너무 많았고 두려움 때문에 눈치도 봤지.


그 때문에 난 결코 아버지하고 대화할 생각이 없었고, 독립한 이후는 절반 정도 의절 상태야.


그렇게 키보토스로 오고 나서 많은 일을 겪은 후 지금처럼 너희 학생들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성격이 되었지만


악몽같았던 과거의 일들이 가끔씩 떠오르는 게 진짜로 싫었고 화가 나기도 했지.


그리고 내가 두려웠던 것은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의 다혈질 성격이 나한테 전염된 건 아니겠지' 였어.


그 불같은 성격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한테 해코지할까 봐 늘 노심초사했던 거지....


미안하다.. 내가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해서.."



그러자 가만히 경청하고 있었던 이치카가 자신의 걱정거리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아니에요 선생님. 사실 저도 마음속으로 걱정했던 것이 한 가지 있슴다.


제 성격의 결점은 화를 계속 쌓아 두고 있다가 임계점을 넘을 때 크게 폭발하는 검다.


온천개발부랑 충돌했었던 일 기억나심까? 그때 제가 극대노했을 때 무차별 난사를 해서 


회수해야 했던 트리니티의 도자기가 산산조각 났지 않슴까.


아직도 제 분노 때문에 임무를 망칠 뻔했던 그때의 일이 생생히 떠오름다.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는 것처럼 제가 폭발했을 때 그 후폭풍이 후배들까지 덮치는 게.. 너무 두렴슴다.


제가 사랑하는 후배들이 제가 폭발하는 걸 볼 때 어떤 생각을 할지도.. 너무 걱정이 됨다..."



난 이치카의 속마음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아무래도 우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네."


"그런 것 같슴다, 하하하.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 놓고 나니.. 어느 정도 후련한 것 같슴다."


"그러게. 이치카, 네가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내 사무실로 오고 싶은 날짜를 아무 때나 말해도 된다.


내가 너의 곁에서 위로하거나 고민을 경청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너희 학생들 곁에는 내가 있단다.


"고맙슴다, 선생님.. 선생님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언제든지 연락해도 됨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저희 학생들을 신경쓰고 보호해 주셨지 않았슴까. 이젠 그 보답을 해야죠.


이 말만 기억해 주십쇼. 선생님께서는, 결코 혼자가 아님다."



이치카의 위로를 들은 내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 말은 내가 그동안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고맙다, 이치카.. 아 진짜 눈물이 다 나올려고 하네."


"눈물 흘리실 것 같은데 손수건.. 필요함까?"


"아니야, 내가 왜 울어. 그냥 감동을 받았을 뿐이야."


"어, 선생님. 밖에 눈이 오는 것 같슴다."



고개를 돌렸을 때 정말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정말 낭만적이네, 안 그래?"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드네요. 작년 크리스마스엔 눈이 안 왔었는데."


"이치카, 메리 크리스마스."


"선생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나는 풍경을 바라보느라 이치카가 머릴 어깨에 기대는 것도 늦게나마 알아차렸다.


오늘은 누가 뭐라 하여도,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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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 소설 시리즈도 마지막이네요.


지금까지 좀 미흡한 이 소설들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