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 식욕에서 비롯된 관념이다. 잉여 생산물과 소유가 충족되자 사람들의 시선은 당연하게도 기본적인 욕구인 의식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식사는 특별했다.


미각과 시각, 그리고 후각이라는 여러 감각을 자극하는 식사는 사람의 만족감과 권위의식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자신들의 정신적-감각적 쾌락을 위해 사람들은 미식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식이란 다분히 감정적이고 감각적이며 복합적인 것이다.


인간이 복잡성을 띨수록 그에 속한 하위 개념들도 복잡해지며, 그 개념이 이지적일수록 더욱 복잡해진다. 여러 감각들이 얽혀있는 미식 또한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을 고스란히 녹여낸 것이 바로 미식이라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무슨 먹을 것을 가지고 그토록 복잡한 담론이 이루어지며 구구절절한 사연이 필요한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인간의 복합성이 비로소 미식의 복합성이며,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미식의 추구가 바로 자아의 실현과 인간성의 발현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식이란 무척 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하다.



혹자는 미식이 갖는 가능성에 대해 그것이 고도화되고 전문화되는 동시에 무법적 성격을 갖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곧 감정이 무분별하게 투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늘 이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항시 그것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미식이라는 관념이 삶을 긍정하고 인류 행복의 총량에도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미식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란 우리에게 아직은 먼 개념일지도 모른다.




미식이란 아름다울 미와 먹을 식이라는 두 개의 한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욕망과 감각을 통한 인간의 다양성의 투사가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


인간은 복잡하고, 미식 또한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식을 추구해야 한다.


미식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인간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