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에 빠진 비명소리와 연달아 들려오는 총성.

"이게 나만의 협상 방법이다! 이것들아!"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건 평소의 네온 사인이 아닌 서로에게 날아드는 총탄이었다.

그렇다고 네로가 있는 이곳이 피가 난무하는 전장이라거나 팔다리가 날아다니는 잔혹한 곳은 아니다. 머리 위에 떠오른 헤일로만 있다면.

자동차 뒤로 몸을 감추고 있던 네루는 테러 집단의 무차별 사격이 잠시 멈추자 곧바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달려나갔다.

무모하다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몸을 사리는동안 민간인들의 피해는 늘어난다. 바짝 마른 장작에 튀긴 불똥마냥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저나가기전에 제압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달려든다.

다치더라도 자신이 다치면 되는 일이다.

"뒈져버려! 돼지새끼들아!"

네루는 순식간에 적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장전을 마친 적들이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방아쇠를 당겼다간 네루의 뒤에 있는 아군까지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 망설임을 읽어낸 네루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잡몹 새끼들."

이곳에서 방아쇠를 주저없이 당길 수 있는 건 오로지 네루뿐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총에서 불꽃이 튀어나갔다.















"그게 어째서 내 잘못이라는거냐!"

답답한 마음에 음료를 단숨에 들이킨 네루는 빈 깡통이 되어버린 캔을 쓰레기 통을 향해 거칠게 내던졌다.

깡! 깡깡..

쓰레기통의 테두리에 맞고 튀어나온 캔이 바닥에 떨어지자 네루는 얼굴을 구겼다. 오전부터 계속 일이 꼬였기에 그녀의 마음 또한 뒤틀리고 꼬이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있었던 진압 작전에서 예상 피해의 수배에 달하는 피해가 나왔기에 네루는 부장으로서 부원들을 대표해 유우카의 쓴소리를 실컷 듣게되었다.

"그리고 뭐가 설교냐고. 잔소리잖아 그냥."

설교라면서 잔소리를 퍼붓는 유우카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자 네루는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테러 집단이 일으킨 사건인데 예상 피해는 대체 어떻게 계산하는건지.

그놈들이 폭탄이라도 터뜨려버리면 건물 두세채가 날아가는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것에 비해서 겨우 자동차 몇대가 터져나가고 1층에 위치한 가게들의 유리창이 모두 박살나는것 정도는 적은 피해일텐데.

"오늘은 기분이 안좋은가봐?"

"앙?"

능글거리는 목소리에 네루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그 주인을 확인하자 네루는 짧게 혀를 차곤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했다.

"나한테 같잖은 선생질을 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라고."

그리 말하며 자리를 떠나려던 네루의 손을 선생이 붙잡았다.

'뭐?'

기척도 없이 다가온 선생의 모습에 네루는 그를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이목을 감출 정도의 실력이 이 선생에게 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보고서. 제출해야지?"

"..."

그런 경계는 이어진 선생의 말에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기척도 없이 접근해 자신의 손목까지 붙잡고서 하는 말이 고작.. 고작 보고서에 대한 일..

'하아. 보고서..'

잔소리에 이어 서류 업무까지 추가되자 네루는 눈을 질끔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된건지 오늘은 하루종일 운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네루는 더이상 반항하지않고 순순히 선생에게 붙잡혀 어제 있었던 일을 아주. 아주 상세하게 써내어 보고서를 제출했다.

"거봐. 하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잖아?"

"..흥."

네루는 선생의 말에 대꾸하지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떠나려하는 네루였지만 선생은 아직 볼일이 남았는지 자리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 선생의 모습을 힐끔 쳐다본 네루는 잠시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 몸을 완전히 돌렸다.















네루와 선생의 첫만남은 오해로 시작되었다.

등교하던 네루의 눈에 무거운 짐을 지고가는 노파가 들어왔고 네루는 그런 노파를 지나치려다 잠시 쉬어가려는건지 거리의 구석에서 짐을 내려놓고 땀을 닦는 노파의 모습에 귀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노파에게 다가갔다.

"할멈. 힘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거야."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짜증을 내는 네루의 목소리 톤에 그녀가 시비를 걸어오는거라고 오해를 했을테지만 노파는 네루의 말을 오해하지않았다.

나이를 먹은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겪어온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게말이예요. 옛날과 다르게 이제는 이런 짐을 드는것도 버거워진 나이가 되었네요."

네루는 노파의 말투에서 기품이라는것을 느꼈다.

남들은 꼬맹이라고 얕보는 작은 키의 자신에게도 말을 올리며 예를 차리는 노파의 모습에 네루는 노파가 평범한 노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는데."

던지듯 내뱉은 네루의 말에 노파는 도움을 거절하려했지만 이렇게 엮여버린 이상 끝을 보지않으면 찜찜한 느낌만 남을거라는 사실을 아는 네루 또한 양보하지않았다.

결국 실랑이 아닌 살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의 모습에 누군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지금의 선생이었다.

'노인을 괴롭히는건 그만두라고 했었나.'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린 네루는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며 흥겨운 콧노래와 함께 거리를 걸었다. 오해로 시작된 만남은 노파의 한마디에 바로 풀렸고 선생은 네루에게 사죄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그는 네루의 선생이 되었고 그 만남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었다.

네루는 겉으로 선생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사실 그가 싫은건 아니었다. 그저 익숙하지않았기에 밀어내는것뿐이었다.

남들과 어울리는 법을 모르니까. 밀어냈을뿐이다.

"오늘은 즐거워보이네?"

"..하아."

익숙한 목소리.

"선생. 왜 계속 친한척 말 걸어오는거냐고."

앞서 말했듯이 겉과는 다르게 네루는 선생을 싫어하지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런 선생의 태도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건 네루에게 있어서 낯선것이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네루랑 꽤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능글맞기는.

"아앙? 누구 맘대로 그런걸 결정짓는건데!"

네루는 틱틱 거리면서도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는 선생을 피하지않았다. 선생의 말대로 시간이 제법 흐른탓에 지금의 네루는 그저 말로서 그를 밀어낼뿐이었다.

그래봤자 선생은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기에 무의미했지만.

"..선생. 선생은 뭘 하다가 선생이 된거야?"

문득 그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기척없는 움직임. 네루의 경계를 뚫고서 손목을 잡아채는 은밀함.

그런 모습은 결코 교사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네루는 복잡한 일이라면 관심도 가지고싶지않았지만 그것이 선생과 관련된 일이라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아보고싶었다.

"글쎄. 그럼 네루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하게된거야?"

"...."

네루는 대답을 회피하며 오히려 되물어오는 선생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가까워졌다고한건 선생이었으면서 비밀은 밝힐 수 없다는건가.

뭐.. 그건 네루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이런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마땅히 꺼낼만한 답이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데로 두자니 마음에 들지않았고 마음에 들지않아 날뛰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다.

선생도 그렇게 선생이 된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입을 다물면서 끊겨버린 대화는 선생이 다시 이어붙였다. 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화가 끊겨도 둘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마저 흐르지않았으니까.

"이후에 따로 일정이 없으면 잠시 어울려줄 수 있어?"

"내가 왜?"

미간을 찌푸리며 네루가 되묻자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헤어핀. 잃어버렸잖아."

그걸 보면 바로 알 수 있는건가?

언제 잊어버린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머리를 고정하던 핀 하나를 잃어버리기는 했었다. 별로 변한건 없었기에 그대로 두었던건데.

"하.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대답한 네루는 선생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 걸었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네루는 선생의 요청을 수락한것을 후회했다.

도저히 자신과는 어울리지않을 것 같은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네루는 저런것을 머리에 꽂아올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몸이 떨려왔다.

선생은 그런 네루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한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있는건지 여러 악세사리를 들었다놨다하면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 선생의 모습에 네루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윽고 선생은 헤어핀을 결정하고 계산까지 마친 뒤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네루의 머리에 핀을 꽂으려들었다.

네루는 화들짝 놀라며 선생의 손을 뿌리쳤다.

"무, 무슨짓이야!"

"응? 이왕 산김에 바로 착용해보려고 했지."

"그러니까! 그걸 왜 내 머리에다 꽂으려하는거냐고!"

선생이 물건을 고르고나면 적당한 가게에 들려 적당한 핀을 구매할 생각이었는데 선생은 네루가 몸서리를 치며 거부하는 귀여운 헤어핀을 그녀의 머리에 장식하려했다.

그가 고르던 헤어핀이 자신의 헤어핀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네루는 무조건 선생을 말렸을것이다.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이미 구매해버렸으니까 너 아니면 써줄 사람도 없는데."

"환불해. 아니면 다른 놈들한테 줘버리라고."

"나는 네가 써줬으면 하는데."

"...뭐?"

"너를 위해서 샀으니까. 네가 착용해줬으면해."

선생의 말에 네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시 자신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어오는 선생의 모습에 네루는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볼일을 모두 끝낸 선생과 네루는 빌딩을 빠져나왔다.

빌딩을 나서는 네루의 머리 한쪽에는 벚꽃 모양의 헤어핀이 장식되어있었다.

곧바로 선생과 헤어진 네루는 선생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자신의 머리 한쪽에 장식된 헤어핀을 만지작거리다가 손을 내렸다.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네루의 얼굴에는 그녀의 머리에 꽃힌 벚꽃모양의 헤어핀과 같이 화사한 꽃이 피어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