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다는 감각은 그 어떤 감각보다 두려운 감각이다.

학원 도시에 들어와 이곳의 평화에 익숙해질수록 고리 너머에 존재하는 바깥 세계에 대해서 사람들은 천천히 잊어가고 있었다.

바깥에서의 삶은 어떠했나.

오염된 식수와 오염된 공기 , 오염된 땅.

주변에 존재하는것은 전부 오염되어 더럽혀진것들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것이 당연한 세상이었으며 그런 세상에 익숙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욕망을 억제하지않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모두가 미쳐날뛰는 세상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미친놈 취급받는곳.

외눈박이 세계에 떨어진것처럼 바깥 세상은 도저히 익숙하질래야 익숙해질 수 없는곳이었다.

"...."

그런 세상에서 빌빌거리며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처럼 나는 그저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눈 앞에서 지인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던 광경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예정된 운명의 이끌림이 있었는지 나는 우연히 이곳 키보토스에 입성할 수 있었고 죽지 못해 살아가던 내게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이 평화는 내게 있어서 독이 든 성배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독이 들어있다는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것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키보토스에 최초로 입성했을때 나와 마주했던 그들은 내게 싯딤의 상자를 건내주었고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었다.

그들의 설명을 길게 들을것도 없었다. 그들을 이끌던 리더의 부재로 현재 키보토스의 상황이 최악이라는것과 그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물건이 바로 내게 건낸 싯딤의 상자였다.

앞서 말한것처럼 독이 들어있다는걸 알면서도 그것을 들이킬 수 밖에 없던것은 그때문이었다.

지옥같은 바깥에서 벗어나 겨우 숨 돌릴 수 있는곳으로 도망처왔것만 하필 도망친 곳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무너져버릴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과 거래했다.

그들이 원하는데로 싯딤의 상자에 들어있던 AI의 도움으로 키보토스 전역의 제어권을 이어받았고 나는 그것을 이곳. 키보토스의 정부 역할을 하는 총학생회에게 양도했다.

이것은 성배다. 독이 들어있음에도 , 그러함에도 성배였다. 그러니 나는 그 잔을 나눠 그들에게도 나눠주었다.

욕심을 부려 혼자서 그것을 취한다면 아마도 얼마지나지않아 나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정말 웃기게도 총학생회는 내가 호의를 베푸는 줄로만 알고 거하게 착각을 하며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교사로 임명하곤 키보토스에 존재하는 학원의 학생들을 관리해달라고 요구했다.

못들어줄것도 없었다.

고작해야 학생들의 관리 정도야 바깥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것보단 쉬운일일테니까.

"그러니까 아로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아이가 앞으로 내가 관리해야할 학원의 학생들 중 하나라는 말인가?"

"네. 선생님. 저 아이는.. 게헨나 학원 소속이예요. 이름은 쿠로다테 하루나. 나이는 17세로 학년은 3학년이네요. 부활동은 미식연구회라는 이름의 부활동에 들어가있구요."

"내가 묻고싶은건 그런 정보가 아니야. 내 눈이 정확하다면 지금 저 아이는 단순히 음식이 마음에 들지않아서 건물을 폭파시킨 것 같은데?"

"그러네요. 이전 쿠로다테 하루나의 행동을 분석한 결과. 그녀는 자신이 맛없다고 느낀 음식을 대접한 식당들을 모조리 날려버린 전적이 있어요."

"...."

콰아앙!

커다란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건물 하나가 주저앉았다. 바깥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정신이 날아갈것만 같았다.

"푸우.. 기분만 나빠졌네요."

폭발을 일으킨 당사자. 쿠로다테 하루나는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오며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모를 그런 말과 함께 먼지가 가득 묻은 제 옷을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뜨거운 화염과 폭발을 뚫고 나온것치고는 상처 하나 없어보이는 모습에 나는 총학생회가 내게 맡긴 교사라는 이름의 역할이 그저 그 이름 그대로 학생들을 관리하는 직책이 아니라는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나는 이 아이를 컨트롤 할 수 없다.

"쿠로다테 하루나?"

"..누구시죠?"

그러니 학생들을 내 뜻대로 다루려던 계획은 뒤엎어버리고 처음부터 계획을 다시 세워야했다. 가지고 있는 힘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한참 앞서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만약 내가 저런 폭발에 휘말렸다면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건물 잔해에 깔려 죽어버렸을테니까.

"게헨나 학원의 3학년이지? 반가워. 나는 앞으로 너. 그리고 게헨나 학원의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 그러니까.. 선생님이야."

"선생님..이요?"

의문으로 가득찬 시선으로 하루나가 바라보자 나는 생긋 미소를 드러내며 그녀가 경계하지않도록 최대한 평온한 모습을 연기했다.

거대한 저격총.

등 뒤에 흉악한 무기를 둘러메고 있는 그녀는 마치 그것이 작고 가벼운 가방이라도 되는것 마냥 아주 가뿐히 그것을 다뤄내고 있었다.

이걸로 그녀의 힘으 모든 면에서 나보다 앞선다는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관리해야할 학생들 대부분이 눈 앞의 괴물처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학생들을 어떤 방법으로 관리해야할까?

답은 간단하다. 힘으로 다뤄낼 수 없다면 그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가면 될일이다. 만나는 놈들은 모두 적으로 취급하던 바깥 세상에서도 지인을 늘려만가던 나였다.

그러니 누군가와 거리를 좁히는건 내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싯딤의 상자에서 벗어나 내 도우미를 자청하는 AI의 정보력만 있다면 말이다.

"맛없는 음식이라도 먹은것 같은 표정이네.'

"..그래보이나요? 하아.. 나름 기대를 가지고 들렸던 곳인데 기본조차 되어있지않은 식당이었어요. 테이블 관리를 시작으로 코스 요리임에도 조화롭지않은 음식들 투성이었거든요."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비록 낯선 타인이라하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같은 의견을 말해온다면 자연스레 경계는 내려가는 법이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적당히 그녀의 의견에 공감해주며 아로나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최대한 이용한다.

미식연구회라는 이름의 동아리는 그저 이름뿐인 동아리가 아닐것이다. 맛없는 식당은 폭발시킨 전적이 여러번 있ㄴ사는 AI의 말을 분석해본다면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혀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있는거겠지.

"확실히 음식이 조화를 이루지못하면 그만큼 큰 문제는 없지."

"그렇죠? 후후.. 정말 선생님인지는 모르겠지만 뭘 좀 아시는 것 같은 분을 만나서 기분이 조금 나아졌네요. 그럼. 나중에 뵐 일이 있다면 그때에는 먼저 인사드릴게요."

테러리스트로는 보이지않는 정중한 예의로 내게 인사를 올린 하루나가 물러나자 나는 미소짓고 있던 입가를 되돌렸다.

손을 올려 입가를 어루만지며 AI에게 입을 열었다.

"아로나. 쿠로다데 하루나에 대해서 사소한것까지 전부 끌어모아."

"네. 선생님."

미식을 즐기는 미식가라.. 그녀의 마음을 파고드는건 그리 어려워보이지않았다.







미식이라는건 음식을 먹는것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루 있는 의견이다. 저마다 느끼는 감각도 다른데 미각 또한 별 다를게 있겠는가?

그러니 미각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음식을 시작으로 차츰 그 허들을 낮춰가다보면 혀의 감각 또한 조금씩 무뎌지기 마련이다.

"남겨둔 껍질을 이용해서 바삭한 식감을 남기고 속살은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욕즙은 그대로 남겨뒀네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맛평가를 남기는 하루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 몫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다.

내가 느낄 수 있는것이라고는 그저 물컹거리는 감각뿐이었지만 최대한 그녀의 의견과 맞물릴 수 있는 맛평가를 내려야했다.

"그러네. 그래도 나는 함께 나온 이 소스보다는 따로 제공한 이쪽의 소스가 더 마음에 드는데. 한번 먹어보겠어?"

앞서 말한것처럼 맛의 허들을 낮추는건 쉬운일이다. 매일 매일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을 먹는다면 그 감각에 무뎌지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무뎌진 감각은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될것이다. 이미 여러번의 실험을 통해 분석한 결과였다.

지금 내 눈 앞의 하루나는 이미 음식의 맛보다 나와 함께 먹는 이 상황 자체를 음미하고 있는것이다.

그렇게 차례 차례 나오는 음식을 먹어치우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음식이 나왔다.

"푸딩인가요. 흐물거리는 감각은 별로 좋아하지않는데... 플레이팅은 정말 예술처럼 잘되어있네요. 먹지않아도 눈으로 맛을 본다는건 이럴때를 위한 말일까요? 후후.."

탱글 탱글한 푸딩과 함께 접시 한쪽에 장식된 꽃송이를 툭툭 건드리던 하루나의 시선이 한순간 나를 스쳐지나갔다.

계속 하루나를 주시하고 있지않았다면 못 알아차렸을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녀와 만난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하루나의 시선을 놓치지않았다.

"오늘도 제법 만족스러운 식사였네."

"네. 선생님과 만나고나서.. 얼마나 지났었죠? 짧은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네요."

적당한 대화를 주제로 서로 말을 주고 받는다. 원하는것을 얻어내기위한 수단일뿐이지만 이러한 수단 또한 그녀를 만족스럽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면 그녀는 그것을 거부하겠지만 이런식의 대화를 통해서 그녀의 벽을 조금씩 무너뜨린다면.

"그러고보니 근처에 근사한 호텔이 하나 새로 들어선것같던데. 이후에 일정이 없다면 잠시 들렀다갈까?'

"호텔이요? 으음.."

하루나에게 일정이 없다는것은 이미 모두 파악한 상태다. 첫만남을 시작으로 시간을 두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으니 하루나가 나를 경계할 일은 결코없다.

그리고 이 제안을 거부할리도 없다.

검지로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자신이 고민하고 있다는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그녀를 향해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잠시 들리는거니까. 그쪽에 어떤 음식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고말이야."

"..그런가요. 그럼 어울려드리도록할게요."

동행 요청을 하루나가 수락했지만 나는 결코 서두르지않았다.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식사를 끝마치고 식당을 나서며 또 다시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지만 딱히 의미가 있는 대화가 아니었다. 서로 교류하고 있다는것을 말을 주고받음으로서 나타내는것뿐이다.

시각과 청각.

두가지를 이용해 서로의 호감도를 끌어내고 가까이 붙은 몸에서 살며시 뿜어져나오는 체향에 후각 또한 자극된다. 조급해하지않고 느긋하게.

마치 늪에 빠져버린것처럼.

절대 헤어나올 수 없도록 철저하게.

함께 호텔에 들어선 우리는 잠시 호텔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하루나의 시선이 잠시 내게서 떨어지자 나는 곧바로 카운터로 향해 미리 예약해둔 방의 카드를 얻었다.

하루나에게 돌아가자 그녀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꼭대기층이 비어있더라. 가볍게 와인이나 한잔하면서 전망이라도 구경하려는데.. 어때?"

"..나쁘지않네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텐데 하루나는 내 요청을 거절하지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게서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건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

자연스럽게 곁에 다가가며 그녀의 팔을 이끌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꼭대기층까지 올라가는 순간. 그동안 이어져왔던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않았다. 묘한 침묵이 우리 사이에 자리잡았지만 지금은 딱히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 아니었다.

이러한 침묵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위한 조미료가 되어줄테니까.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층 전체가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진 곳 앞으로 다가가 카드를 이용해 잠금을 풀고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하루가를 바라보자 그녀의 두눈동자에는 기묘한 열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방 안으로 하루나가 들어서자 나는 그녀를 뒤따라 들어가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