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https://waitbutwhy.com/2019/08/story-intro.html


이건 사회다.




왼쪽 팔을 확대해보자.




좀 더.




피부가 좀 튀어나와 있는게 보이나? 아랫쪽에 튀어나온 걸 더 확대해보자.




조금만 더.




거기! 나 보여? 더 가까이.




안녕. 내 이름은 Tim이다. 나는 이 사회의 세포 하나다. 더 정확히는 미국 사회의 세포 하나.


이제 우리가 왜 여깄는지 설명해주겠다.


작가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써, 나는 내 삶의 많은 시간을 내가 속해있는 이 사회, 더 나아가 사회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사회를 거대한 인간으로 생각했다 - 우리 개개인처럼 살아있는 유기체, 다만 훨씬 더 큰.


당신이 거인의 몸에 있는 하나의 세포일 때는, 거인이 무엇을, 왜 그렇게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 큰 시야에서 모든 것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해 볼 것이다.


문제는, 사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해보려고 하면, 이런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현실과 온라인에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사회는 이런 모습에 가깝다:




개개인의 인간들은 나이가 들수록 철이 들어가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거인은 해가 갈수록 더 어린애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주제에 대한 블로그 포스트를 쓰기로 결심했다. 근데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사람들에게 내가 사회에 대한 글을 쓸 것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고 미디어의 반응은, 그리고 정부의 반응은, 그리고 기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같은 말을 나한테 한 것이다.


하지 마라, 건들지 마라, 다른 주제에 대해서 써라, 다른 거면 뭐든 좋다, 이건 그럴 만한 주제가 아니다.


그들이 맞다. 분쟁의 요소가 없는 수많은 주제들을 놔두고, 왜 이토록 민감하고 많은 독자들을 떨어져나가게 만들 주제를 선택한단 말인가? 나는 사람들의 경고를 듣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 뒤에 든 생각은, "잠깐 뭐라고? 나는 거인 속에 살고 있고 이 거인은 슈퍼마켓 아이스크림 코너 앞에서 여섯살 짜리처럼 징징거리고 있는데 내가 이 주제를 다루는게 괜찮지 않다는거야?"


나에게 충격을 준건 그것이 바로 내가 써야 하는 주제였다는 점이다 - 왜 사회에 대해 다루는 것이 그토록 민감한 것인지.


나는 최종적으로 이 두 가지 주제를 같이 다루기로 했다: 사회의 현 상태와 왜 그것에 대해 다루는 것이 별로 좋지 않는 생각인지 (특히 나한테) - 그리고 이 두가지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것이 파도파도 끝없는 주제가 될 것인줄은 알았다. 하지만 내가 3년 동안 이 주제를 파면서 미국 역사, 세게 역사, 진화심리학, 정치이론, 신경과학, 몇십권의 책, 수백개의 데이터와 글, 그리고 말 그대로 수천개의, 몇몇은 흥미로웠고 몇몇은 내 머리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어지는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가? 예상 못했다.


내가 이렇게 깊이 이 주제를 파게 된 이유는, 연구와 뉴스와 사설을 읽고 팟캐스트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각각의 경우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의 아주 작은 부분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은 이야기들이 이루고 있는 큰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골몰했다. 그래서 나는 내 정신을 높이 띄워 이 전체 그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끝없이 주제를 파내려갔다.



듣고 공부하고 고통스럽도록 많은 생각들을 몇달동안 해낸 끝에, 나는 드디어 내 생각을 여러분과 나눌 준비가 되었다.


가끔 몇가지 주제는 대화의 대상으로 삼기 어려워지는데, 그 대화가 틀에 박힌 모양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들어봤던 주장들을 듣고, 들어봤던 표현들을 듣고, 질릴 때 까지 계속 반복. 만약 우리가 쓰는 용어들이 역사적 부담으로 인해 민감해진다면 대화의 수단으로는 부적절해진다. 그게 여기서 일어날 일인것 같다고 본다. 우리는 모두 사회에 대한 각자의 시야에 갇혀 있고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3년 동안 했던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사회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였다. Wait But Why에서는 주로,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단어들과 비유와, 그리고 당연히, 아주 많이 그려진 형편없는 그림들이다. 이것들은 세상을 모든 새로운 렌즈를 달아준다. 이 렌즈를 통해 세상과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글은 다음 몇 달간 올라올 글들에 앞서 올라오는 서론 격의 글이다. 시리즈의 처음 부분에서는 이 새로운 렌즈에 익숙해질 것이다.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이 렌즈를 사용하여 제정신인 블로거라면 다루지 않을 것들을 바라볼 것이다. 내가 내 일을 제대로 해낸다면, 시리즈가 끝날 때 모든 것이 당신에게도 쉽게 이해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현재 걱정스러운 시류들이 흐르고 있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똑바로 볼 수만 있다면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Wait But Why 커뮤니티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결의로 가득 찬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시리즈의 목표는 그 커뮤니티의 명확함을 강화시켜 우리 스스로와 세상에 대해 더 잘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작업에서 우리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Wait Buy Why 포스트와 같이 이 글의 모든 내용은 토론의 여지가 있다 - 이 글은 끝없이 진행중일 작업의 최신 개정판이다. 글이 올라오고 나서 여러분의 댓글을 읽는 것은 내 명확함을 강화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주제를 택할 때, 나는 내 최선을 다해 겸손함과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마음먹었다. 정치와 같이 그 누구도 겸손하기 어려운 분야에서도. 그런 상태가 당신의 시작점일때 얼마나 많은 지적 진보를 이뤄낼 수 있는지 놀라운데, 이 글을 쓰는 과정은 하나 이상의 분야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 처럼 느껴졌다. 따라서 시작하기 전에, 이 모든 것에 대해 편견을 버리도록 시도해보자. 그걸 머릿속에서 던져버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어디 구석에 넣어만 둬라. 글을 다 읽고도 그 편견들을 원하고 있다면 어디서 가져올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시작한다...


챕터 1: 불과 빛의 위대한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