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잘 만든 이야기는 때로 그 가치가 바래 보인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이 말에 어울리는 영화 중 하나이다.
우리는 흔히 좋은 이야기에 대해 말할 때, 듣는이에게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게 좋은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 법칙에서 예외인 장르가 있으니, 바로 동화이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모범 답안'을 제시해야만 하고 그렇기에 정답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화의 질은 그 '모범 답안'이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가로 결정된다.
이런 측면에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이하 <라야>는 현대식 동화를 만들어내는 디즈니의 역작이라 불릴 만하다.
<라야>는 <라푼젤>이후의 디즈니 리바이벌 작품들의 모든 주제를 한데 그러모아 뭉쳐놓은 영화이다.
<라푼젤>의 '꿈에 대한 열망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꿈들에 대한 기대'
<주먹왕 랄프>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
<겨울왕국>의 '남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와 그런 이들을 진정으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랑'
<빅 히어로>의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진실된 관용'
<주토피아>의 '선입견에서 벗어날 때 만들어지는 진정한 평등'
<모아나>의 '자신을 발견하여 이루어내는 과오 청산'
그리고 <라야>는 이 모든 주제들을 속에 품으며, 이 주제들이 가능해지는 단 하나의 필수 조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서로를 향한 믿음.'
이야기의 서사를 이끄는, 깨어진 용의 구슬 조각을 모으는 일행은 매력이 넘치나 동시에 평면적이다.
특히 시종일관 '무조건적인 믿음'만을 강조하는 '시수'와 '불신'을 바탕으로 '복수와 가족'을 위해 움직이는 '라야'
이 두 주연은 가장 분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그런 성격이 강하다.
오히려 반동 인물에 속하는 '나마리'가 훨씬 입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제작진이 의도한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건 '나마리'로 대표되는 '악인'들을 '왜 우리가 믿어줘야 하는가'이기 때문이다.
<라야>는 이야기를 '라야'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그러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라야에게 이입하게 되고, 라야가 무언가를 달성하면 같이 기뻐하며, 역으로 무언가를 상실하면 같이 슬퍼한다.
그러다 마침내 라야가 분노에 휩싸인 순간, 관객들은 라야의 분노를 공유하며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라야의 분노가 해소되길 바라게 된다.
분노에 가득 찬 라야가 그 분노를 일으킨 대상인 나마리를 제압하고 승리를 눈앞에 거머쥐어 감정이 폭발하려는 순간, 나마리는 절규한다.
"이 비극의 책임은 너에게도 있어!"
자신이 불러온 비극, 자신이 그 비극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환경, 그리고 자신이 비극을 불러온 이유를 공감해주지 않는 타인.
그리고 그것들을 막지 못한 자기 자신.
이 모든 것에 분노하고 좌절한 나마리는 그 상황에서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구차하며 궁핍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라야는 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마리의 대사와 라야의 자기 인식이 겹쳐진 그 순간, 서로 완전히 달라 보였던 둘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모의 말에 영향을 받고 자라 그 신념까지 이어받게 된 존재, 자신의 신념를 관철하려는 존재,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존재.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
타인은 나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빚어낸 두려움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물론 라야가 이러한 성찰을 그 짧은 순간에 이루어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녀가 그 순간에 느낄 수 있었던 어떠한 희미하고 미약한, 깨달음의 파편의 흔적 정도가 전부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라야가 옳은 길로 들어서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왜냐하면 이미 그녀의 아버지, 벤자와 그녀의 희망이었던 시수가 자신들을 희생해가면서 라야에게 나아갈 길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믿어라.'
라야는 단 한 번의 배신만으로도 타인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버렸지만, 벤자와 시수는 오히려 배신을 당했을 때 더욱 상대를 신뢰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자기희생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행위를 통해 지켜낸 둘의 신념은 처음엔 라야가 나마리를 죽이지 않는 것에 그쳤지만,
그 작은 변덕은 나마리가 라야를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고, 동시에 라야가 나마리를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최후의 순간 벤자와 시수의 의지는 라야의 마음을 바꾸는 데 성공했고 세상을 구하고 자신들을 구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실, 라야는 이미 몇 번이나 자신을 배신한 이들을 믿어주는 것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당장 좀도둑이었던 노이 패거리와 자신과 시수를 붙잡았던 텅을 믿어주었고 그 결과 라야는 강력한 아군을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라야가 나마리를 믿지 못했던 건 서로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라야와 나마리는 서로에게 '실패한 과거의 상징'이자 '실패할 수도 있는 미래의 가능성'이었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 태도에서 비롯된 '무지'가 바로 두려움의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앞서 말했듯 둘은 닮은 점이 많았음에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라야와 나마리의 반응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당연한 반응이다.
당장 우리들도 나에게 해를 끼친 자, 특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손해를 끼친 자를 믿을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벤자와 시수가 당했듯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는 그게 상대의 고의든 실수든 언제나 좋은 결과로만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우리가 상대를 믿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용 모양 장식'이다.
'용 모양 장식'은 서로가 알고 있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다.
그 '단 하나', 내가 상대와, 상대가 나와 공유하는 단 하나의 공통점만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있음을 제작진은 '용 모양 장식'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단 하나의 공통점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라야>의 이야기에서 계속해서 나온다.
"내가 선물을 줄게."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조건 없이 주는 것.
그 행위를 통하여 우리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고, 그 공통점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음을 <라야>는 말하고 있다.
내가 <라야>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라야>가 전하는 주제가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다름'을 부각하며 편을 갈라 싸우는 모습은 쿠만드라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서로를 믿자'라는 주제는 너무나도 고지식하고 이상적이며 유치한 말로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라야>에서 주는 주제가 고지식하고 이상적이며 유치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세상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복잡한 것은, 그 진리를 실천하는 과정이다.
주제에 대해서만 길게 말하긴 했지만, 라야는 이 외에도 훌륭한 점이 많다.
영상미라던가, 캐릭터성과 세계관을 구축하고 보여주는 방법이라던가, 화려한 액션이라던가.
하지만 나는 그런 쪽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고, 그저 느낄 수만 있기에 그나마 내가 조잡하게나마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의 주제에 대해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 해석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도야 어쨌든, 관객이 그걸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그건 이야기꾼의 문제이고, 또 내가 생각한 제작진의 의도와 실제 제작진의 의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한 줄 평을 남기면서 이 부끄러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신뢰를 통한 회복, 회복을 통한 신뢰."
후기추 - dc App
오
와 진짜 잘썻다
고지식하고 이상적이고 유치한 주제지만 그만큼 세상에 필요한 주제라는거 크게 공감합니다
쓰신 신뢰의 시작인 공통점에 대해서 나마리가 시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불완전한 신뢰로 인한 갈등들을 보며 영화의 서사가 다소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의견 주셨네요. 좋은 해석 고맙습니다
좋다조아 - dc App
와 진짜 진짜 잘썼다
좋은 후기
지적했듯이 두 선동인물 모두가 단일한 작동 원리로 작동하고 있고, 각각 유아 수준의 맹목적인 믿음(시수, 그리고 어쩌면 디즈니의 지난 영화들)과 믿음에 대한 불신(라야)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인물들이 지나치게 상징적이고 획일적인 원리로 작동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결국 어떻게 변모하는지가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이 들었음 ㅇㅇ
둘 다 믿음에 대한 긍정적인 방향을 인지하고 있지만, 하나는 너무 믿어서 문제고 나머지 하나는 실천을 안해서 문제라는 점에서 적어도 믿음과 신뢰에 대한 이야기를 일차원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은 (달리 이야기하면, 시수의 방식으로만 하려고 하지 않은) 시도가 돋보였다고 볼 수도 있고..
믿음과 신뢰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각각 시수와 라야의 (일시적이지만) 목숨까지 바친 부분을 통해 완곡하게 드러냈다고도 볼 수 있고
나는 보면서 뭔가 캐릭터 시선 따라가는 게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랑 겹쳐보이더라고. <메리다>가 메리다의 시선을 이용해서 엘레노어의 성장을 그려냈듯 <라야>도 라야의 시선을 이용해서 나마리의 성장을 보여주는 듯한 서사 구조가 보였음. 그래서 다음 번에 볼 땐 나마리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봐보려고.
그렇게 볼 수 있는 지점들도 분명히 있음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