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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티 크리스트 >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이너북) 나경인 옮김



꽤나 공격적인 책이다. 내용이나 문체나. 크리스트교도들에게 보이면 두들겨 맞을까 두려운 수준의 책이다.

니체의 저서 중 가장 자극적이고 분량이 짧아 소장해서 읽게 됐다. 워낙 짧아 보여서 축소판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내 예상과 달리 니체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니체의 저서는 이것만 읽은지라 판단이 어렵긴 하다만.

시작부터 어딘가 중2병에 심취했다는 느낌도 든다.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약자나 소수자의 비난에 이용될 수도 있을 듯하다. 나치와 엮일 만도 하다.

상당히 돌직구 화법이다. 크리스트교의 근본 자체를 비판한다. 철학자이면서도 철학 자체를 비판한다. 대단한 모두까기 실력이다.

니체는 세속적이고 유물론적인 성향도 있어 보인다. 꽤나 현실적인 사람이다. 정신이니 도덕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들을 추구하는 이들의 뼈를 때리는 기분이다. 과학적이기도 하다. 이성과 과학, 그리고 실체만 인정한다.

모든 소수자나 약자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확장하는 진보 좌파 세력들을 까는 기분도 든다. 선한 이미지의 신 또한 그런 식으로 힘을 얻은 듯하다.

저자가 불교에 옹호적이다. 불교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신을 초월했기 때문이란다.

저자가 최하층민을 혐오한다.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종교뿐 아니라 많은 세력들이 그들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한편으론 저자가 불교 등의 오리엔탈리즘에 깊이 심취해 보인다. 단일민족이라고 한국을 좋아한다는 서양의 극우 세력을 보는 것 같다.

저자가 반유대주의 성향도 있다. 괜히 나치와 엮이는 게 아니다.

성직자들도 비판한다. 여러 명목으로 돈을 뜯는 것을 지적한다.

이뿐이 아니다. 예수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예수가 정치사범이라는 주장엔 나도 동의한다. 물론 난 그래서 예수를 좋아하지만.

크리스트교를 예민한 은둔형 외톨이로 몰아간다. , 현실 도피라. 그럴 듯해 보인다. 덧붙여 크리스트교가 실은 쾌락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데 동의한다. 나도 아이도루 덕질로 쾌락과 현실 도피, 거기에 성스러움까지 동시에 느끼는 것이 가능하니까. 어쩌면 덕질은, 크리스트교와 본질적으로 같은 걸지도 모른다. 저자의 의도와 달리 내게는 칭찬으로 느껴진다. 더러운 덕질을 세계적인 메이저 종교와 동급 수준으로 그 가치를 올려주다니. 허허.

예수의 사상과 크리스트교의 사상을 별개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이미 19세기에 크리스트교의 죄는 까발려졌고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21세기에도 크리스트교가 건재하다는 것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정신병이 오기 전에 뒷목을 잡고 쓰러질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니체는 크리스트교도들보다 예수의 진짜 가르침을 파악하고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제자들이 살아있던 시절부터 이미 예수의 가르침은 왜곡됐다.

니체가 주장하는 크리스트교의 정의를 보니 운동권이나 PC주의 등의 성향들이 떠오른다. 약자들이나 하층민들, 언더독을 정의롭게 포장하는 이들 말이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과학을 적대시하는 것 또한 지적한다. 과학은 크리스트교의 최악의 적이다. 지금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지구평행설 따위를 아직도 믿는 이들이 존재하는 걸 보면 말이다.

민주주의마저 비판한다. 무능하고 무지한 다수의 이들을 선동하는 데 있어서 어쩌면 크리스트교가 원조인 걸까?

순교자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목숨을 버린다고 해서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이건 종교뿐 아니라 사회 문제나 정치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죽는다고 미화되거나 신격화되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씁쓸한 일이다.

생각하는 것과 의문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당파적인 인간또한 지적한다. 여기에 소속되면 거짓말쟁이가 된다는 주장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나도 종종 당파적인 인간이 될 때가 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크리스트교 특유의 여성혐오도 지적한다. 성적인 것, 여성의 특성을 죄악시한다. 확실히 내가 봐도 그래 보인다. 이런 종교를 왜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믿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평등주의도 지적한다. 니체는 제대로 엘리트주의적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평범한 이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 나름의 가치를 존중해준다. 허나 사회주의자는 비난한다. 권리의 평등을 요구해서이다. 크리스트교와 동급으로 취급한다.

무정부주의에도 종류가 여럿인데 니체는 하나로 뭉뚱그려 지적한다. 나 또한 아나키즘을 지적하는 입장이지만 이건 좀 아니라고 본다.

크리스트교가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자신들만의 새 권위를 추구하려는 건 많은 이들의 희망이 아닐까. 나부터도 그러했으니까. 니체의 말대로 혁명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 이 부분은 쉽게 이해가 됐다. 실제로 크리스트교도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자들과 그 체제도 그랬으니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데 실은 누구보다 종교적이었던 그들이다.

니체의 말대로라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이룬 문명이 크리스트교에 의해 파괴됐다는데, 어쩌면 이들이 계속 존재했다면 인류 문명은 훨씬 빨리 발전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크리스트교의 잘못이 확실해 보인다.

당시 기준으로 이슬람교 문화가 크리스트교보다 한 수 위라고 니체는 주장한다. , 21세기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틀린 말이지만.

루터가 교황이 타락했다며 종교 개혁을 한 것이 오히려 르네상스를 죽인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저자도 독일인이면서 독일인을 비난한다. 자학적이다. 정말 안 까는 존재가 없는 수준이다.

이제 책을 정리하자면, 막상 니체 본인은 강함과 초인을 추구했으나 말년에 정신병에 걸렸다고 한다. 자신이야말로 오히려 누구보다 나약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니체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지적하고 싶은 내용도 많았다. 굳이 반기독교적인 사람이 아닐 지라도 누구나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으로 보인다.

크리스트교도는 아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크리스트교도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아닐까. 내가 빠져 있는 아이도루 덕질 또한 일종의 종교가 아닐까.

덕질은 연애하기 힘든 내게 유사 연애 감정과 행복한 망상을 선사해주며 현실부정과 더불어 구원의 손길을 내렸다. 아마 많은 오타쿠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여성, 그리고 아이도루를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본 게 아니라 거기에 종교적인 신성함마저 부여하며 환상을 추구했다. 니체가 봤다면 한심하다며 내게 죽빵을 갈겼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런 니체 앞에서도 나는 굴하고 싶지 않다. 니체가 바라는 이성적인 세상에서 나는 덕질로 순교자가 될 것이다.

이미 나는 덕질로 시련을 겪었다. 그리고 그 고난을 뛰어넘었다. 리카짱의 동거설로 인해 3주 동안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정한 베드로처럼 한동안 리카짱을 부정했으나 결국 다시 돌아왔다.

신은 죽었다. 허나 여신들은 살아서 존재한다. 그녀들은 성령이다. 나는 니체의 무덤에 침을 뱉으며 내 안의 세계를 지킬 것이다. 그것이 이성과 과학, 그리고 현실에 어긋난 행위일지라도 나는 그녀들과 함께 하는 세계를 지킬 것이다. 신은 죽었고, 니체도 죽었지만, 그녀들을 향한 내 마음은 언제나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