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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리히 짠의 음악 > - 러브크래프트 (동서문화사) 정광섭 옮김



8. 찰스 워드의 기괴한 사건


본래 에리히 짠의 음악에 수록된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로 각별하게 생각하는 작품인지라 따로 감상문을 쓰겠다.

어릴 때 영언문화사에서 출간된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이라는 판본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바 있다. 당시 너무 마음에 들어서 소장하려고 했는데 절판된지라 내 생애 최초로 책 전체 내용을 필사해두려고 했다가 시간이 없어서 포기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러브크래프트 전집에 이렇게 당당히 수록되어 있어 굳이 필사까지는 안 해도 됐다.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꽤나 궁금하다. 악명이 자자한 동서문화사특유의 번역이 우려된다.

십여 년 만에 다른 판본으로 다시 읽는 거지만 수록작 중 가장 흥미진진하다. 시작부터 재미를 느꼈다. 가독성이 동서문화사 판본의 러브크래프트 소설 중 가장 뛰어났다. 크툴루 시리즈보다 이게 진짜 러브크래프트 최고의 작품으로 보인다.

찰스 워드와 조셉 커윈은 무슨 관계일까?

지금 다시 보니 이 작품에도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인종차별주의 성향이 드러난다. 황인종으로서 안타까울 지경이다.

커윈은 금지된 흑마법뿐 아니라 장사에도 꽤 재능이 있어 보인다. 역시 실험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살짝 추리물의 요소도 있어 더 재밌게 느끼는 것 같다. 후훗, 내 취향이다.

지금 깨달은 거지만 이 작품도 전형적인 러브크래프트 스타일의 냄새가 진동한다. 이분도 참 한결같다. 나쁘게 말하면 자기복제와 매너리즘이 심해 보인다. , 이분은 이게 매력이겠지만. 오히려 러브크래프트라는 이름값을 하겠답시고 러브 코미디 같은 장르의 소설을 쓴다면 그건 그거대로 끔찍하고 무서울 것이다.

그 유명한 네크로노미콘이 이 작품에 등장한다.

커윈의 농장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어딘가 늙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게 인간 세상에선 크나큰 저주가 아닐까 싶다.

찰스와 커윈의 얼굴이 똑같다니. 찰스가 미칠 만도 하다. 나도 나랑 닮은 사람을 보면 괜히 동질감 같은 걸 느낄 때가 많은데.

문득, 찰스가 제대로 심취해서 조사하러 돌아다니고 초상화까지 뜯어내 가져오는 등의 기행을 보아하니 돈이 꽤 많아 보인다. 미쳐도 돈이 있어야 제대로 미친 짓이 가능하다.

찰스는 너무도 너드 타입에 제대로 씹덕 기질이 있어 보인다. 이런 놈이 올바르게 덕질을 해야 하는데. 나 같은 지나가는 행인 수준의 범인(凡人)들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존경스럽다, 찰스! 미치려면 이렇게 미치자!

찰스의 부모님도 문제라고 본다. 아들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뭔가에 심취했음에도 뒷바라지까지 해준다. , 부모가 막았더라도 찰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구에 매진했으리라.

예전에 내가 크리스마스 이브 기념 크툴루 소환식을 거행한 적이 있는데, 찰스 이놈은 진짜로 악마 소환식을 치른 것 같다. 정신 차려, 찰스!

찰스는 지나칠 정도로 커윈을 닮아간다. 복제인간 수준이다.

찰스는 뭔가 일이 꼬이며 살짝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하다. 그러나 곧 변덕을 부리며 다시 괴상한 광기를 드러낸다. 이전의 광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의 변덕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새 영혼이라도 바꿔치기를 당한 걸까? 타자기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도 수상하다. 설마...?

윌렛은 꽤 책임감이 넘치는 의사로 보인다. 보통의 의사들은 이 정도로 고생하며 자신의 환자를 위해 애를 쓰지 않을 텐데 말이다. 찰스, 너 의사 선생님 잘 만난 거 행운으로 여겨라!

윌렛이 발견한 수많은 생명체들의 정체는 뭘까?

비밀통로 안 연구실 묘사는 기괴함 그 자체였다. 읽는 것만으로도 당장 사악한 흑마법을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혼혈 흑인 고메즈와 알렌 박사는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알렌 박사의 진짜 정체가 수상하다.

설마 찰스의 실종은 찰스의 정체를 알아낸 윌렛의 자작극인가?

다른 건 몰라도 결말 장면은 강렬했던지라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역시 병원에 입원 중인 찰스는 커윈이었다. 윌렛의 활약으로 커윈은 소멸되어 먼지가 된다. 이 장면은 정말 역대급 결말이다.

정리하자면, 예전만큼 재미를 느낄 수준은 아니었으나 지금껏 읽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중 최고였다.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같은 해산물 모에화, 아니 공포화 소설보다 이런 걸 더 썼어야 한다.

다만 번역도 번역이지만 어딘가 책의 분량을 맞추려고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편집했다는 느낌이 든다. 역시 욕하면서 읽게 해주는 동서문화사답다.

나도 돈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찰스나 커윈처럼 사악한 흑마법에 심취해 혼자 위험한 연구를 했을지도 모른다.

, 이제 찰스와 커윈의 방법을 응용해 영원히 늙지 않는 아이도루를 창조해야겠다. 아이도루의 생명은 짧다. 그만큼 덕질에도 언젠간 끝이 찾아온다. 그러니 영원히 늙지 않는 아이도루로 영원한 덕질이 가능해져야 한다.

집에는 염전 노예들의 피땀으로 생산된 소금이 쌀 한 포대 분량으로 남아 있다. 이 정도면 내 픽의 아이도루 전부를 늙지 않도록 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후후후, 찰스도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으니 나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사는 아이도루들이 더 늙기 전에 상큼한 이미지를 유지하도록... , , 뭐야? 소환식이 잘못 됐잖아? 주문이 잘못 됐나? , 안 돼! 현해탄에 다곤이 산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어! 아아... 하느님!! 살려주세요!!

(이미 작성자가 흑마법에 심취해 실수를 범하고 제물로 바쳐진 감상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