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와 프레게는 함께 수학기초론이라는 극히 전문적·기술적인 논의와 관계도사상을 확립하며 갔지만, 당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역학의 현저한 발달에 상징되듯이 '과학의 세기'라고 불리는 만큼 과학이 발달했던 시대였다. 독일에서는 교육과 연구의 일체화라는 혁명적인 발상에 따라서 베를린 대학이 창설되면, 영국·프랑스에 근대화가 늦는 독일의 산업 형성을 지지해 역사학, 사회학, 교육학, 민속학 등 새로운 학문 분야가 차례차례로 생겨 수학, 물리학, 화학 등 기존의 학문 분야도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오늘의 대학의 기본적인 제분야가 거의 그 골격을 나타내게 되었던 시대이기도 했다. 교양으로서의 학문으로부터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전환을 완수한 독일의 대학은 각국의 모델이 되어, 각국에서 전문직으로서의 학자 집단이 생겼던 것이다. 이러한 당시의 배경 사정은 철학에도 당연한 일이면서 큰 영향을 주어 종래 철학의 한 분야인 논리학·수학·심리학 등등이 독립의 학문 분야로서 분리했을 뿐만이 아니라, 역사학의 영향을 받고, 엄밀한 비판을 거친 자료를 이용해 연구하는 철학사가 철학의 주요한 한 분야로 여겨지게 됐다, 예를 들면, 헤겔과 같이, 일생을 걸쳐 자신의 철학 체계를 혼자서 완성시킨다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되어, 다수의 학자가 공동으로, 헤겔 전집을 발행한다는 것처럼 철학도 전문직화해 갔다. 또, 철학도 당시의 과학의 발전에 수반해, 학제적으로 되어, 과학 철학 등 새로운 철학 분야의 발달 등에 응해, 그 내용도 전문적으로 기술적인 물건이 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영미 철학에서의 분석 철학에 현저하게 되어, 이 경향을 철저하게 한 인공 언어 철학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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