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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일 전, 지인 한 분이 나에게 소설 추천을 요청했다. 자신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 불륜 소재를 좋아하니 그런 쪽으로 추천해달라. 빠르게 머릿속을 가로지른 여러 소설들 중 두 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분량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를 제시했다(스탕달의 《적과 흑》 또한 고려했으나 앞선 두 권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생각하여 제하였다).
제목을 들은 지인은 잠시 생각한 후, 두 권을 다 읽고 싶지는 않으니 그 중 더 "뛰어난 것" 하나만 골라달라고 말했다. 더 뛰어난 것? 그런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결국 지인의 금전적 문제와 소요 시간을 고려하여 《마담 보바리》를 추천하긴 했으나, 마음이 찜찜하여 시간이 된다면 《안나 카레니나》도 꼭 읽어보라고 강조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과연 내가 좋은 선택을 했는가 생각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안나 카레니나》는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이견을 찾기 힘들 정도로 찬사가 내려지는 작품이 아닌가? 반면 《마담 보바리》는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으니 지인의 취향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안정감 있는 쪽을 택하는 것이 낫지 않았나.
지인은 분명 나에게 더 뛰어난 쪽을 골라 달라고했다. 더 뛰어난? 그것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 더 보편적으로 재미를 느낀다는 것을 말하는가? 비평가들의 더 훌륭한 평가들을 말하는가? 그렇다면 역시 찬사가 더 많은 《안나 카레니나》를 고르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최종적인 선택에서 뛰어남을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는 두 걸작을 앞에 둔 채, 시간이나 금전 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아니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개인적인 문제를 고려했다. 무의식적으로든지 의식적으로든지 나는 두 소설 사이의 줄 세우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마담 보바리》는 지루하다(그렇다고 한다). 사실 소설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사람에 따라 타당할 수도 있는 판단이다. 플로베르는 언젠나 주변부의 묘사에 비중을 둔다. 예를 들어, 경마를 관람하는 장면에서 그는 길바닥에 생긴 웅덩이를 묘사하는데 한 문단을 할애한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산책 장면에서는 한가로운 나비의 날개짓에 더 집중한다. 이런 문장들로 인해서인지《마담 보바리》는 불륜 소설임에도 금기를 깨는 것에 대한 긴장보다는 푸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상적인 분위기 속으로 내려앉는다.
반면, 《안나 카레니나》 는 그보다 격정(별로 적절한 어휘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적이다. 일단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을 계속 변화한다.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스럽게 밀도가 높지는 않을지라도 거대한 분량에 어울리도록 이야기는 지속적인 출렁임을 내재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찬사를 받은 대부분의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특성에 의존하고 있을 것이다. 걸작이라 부를 만한 분량(이상하게 사람들은 분량이 많은 작품에 걸작이라는 말을 붙히기 좋아한다), 다루는 주제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끄는 이야기의 재미, (비평가들의 평가까지 확장한다면)이야기를 아우르는 소설의 거대하고 견고한 구조 등등
하지만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을 때는 그런 요소들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과 불륜, 이와 관계된 인물들의 생각 흐름과 결론, 톨스토이의 철학들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톨스토이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인물들이 진지한 문제를 다루는 행동과 사고하는 생각 사이에 위치한 아이러니한 디테일들, 진지한 주제에서 벗어나 걱정 없는 듯이 행동하는 주변 인물들(난 오블론스키 공작이 굴을 먹는 장면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후반부 카레니나를 둘러싼 흥미로운 텍스트들이었다. 톨스토이가 삶의 어떤 철학을 제시했든(난 톨스토이가 종교를 삶의 바람직한 태도로 제시했다고 말하든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교훈을 주든, 사건들의 재미가 어땠든, 그것들은 나에게 전혀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안나가 불륜으로 행복해지는 결말이었어도 톨스토이의 재능에 극찬을 보냈을 것이다.
소설의 문장들을 읽으면 다가오는, 그 소설(가)만의 독특함, 언제나 그것이 나의 독서에서 중요하다. 소설을 기초로 뭉게뭉게 피어나는 추상적인 철학과 교훈은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게 《마담 보바리》는 지루한 소설이 아니었다. 오히려 단조롭게 일상을 묘사하는 플로베르의 문장들은 불륜과 같은 극적인 사건을 다른 일들과 동일선상으로 옮긴 채, 그 금기의 사랑을 앞둔 주인공들의 우스꽝스럽고 아이러니한 행동들을 드러나게 한다. 막장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마담 보바리》만의 희극적인 요소가 나를 즐겁게 했다.
뛰어남. 대부분의 독자들은 문학 작품을 접하며 의식적으로 이를 인지하려 하고 비평가들은 마치 자연스러운 호흡처럼 받아들인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 플롯의 흐름, 주제의 전달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소설가의 기본적인 역량. 마치 우리가 가구를 구매하기 전 살펴보듯, 소설의 텍스트를 하나하나 분해하여 살펴보고 이를 아우르는 결과물 또한 관찰한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완성도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굳이 이런 태도에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대다수가 행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태도가 아닌가. 단지, 책을 읽으며 나에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공산품을 평가하는 행위와는 조금 다른, 정신을 텍스트의 흐름에 맡긴 채 삶과의 대조를 통해 새로움을 깨닫는 행위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자의 방식이 보편적이듯 나의 방식 또한 용인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완성도와 관련하여, 톨스토이의 다른 걸작, 《전쟁과 평화》를 떠오른다. 역시 여러 군데에서 찬사를 받는 이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에 비해 한 가지, 딱 한 가지의 흠이 있다고 한다. 중후반부부터 삽입된 톨스토이의 사견이 담긴 에세이.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소설의 완성도를 해치는, 소설의 수준을 깍는 걸림돌. 하지만 내가 《전쟁과 평화》에게서 받은 감동은 전적으로 이 에세이에 의지한다! 작가의 말이 작품 전체에 걸쳐 울려퍼지도록 한 톨스토이의 선택은 오히려 소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이는 《전쟁과 평화》에 《안나 카레니나》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독자성을 부여한다(물론 글이 난해하여 읽기 어려운 것은 맞다. 소설은 깔끔하게 쓰는 양반이 에세이는 왜 그리 헤겔처럼 지저분한지 의문이다).
며칠 뒤, 지인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마담 보바리》를 이야기의 소재로 꺼냈다. 책은 읽어봤냐, 어땠냐, 플로베르가 어떤 작가인 듯 하더냐. 지인은 잠시 웃더니, 서점에 가서 책은 구경했으나 내키지 않아 사지는 않았다, 그러다 옆에서 유명하다는 작가의 산문집을 팔길래 그걸 구입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아 위로가 되었고 좋았다, 꼭 추천하는 책이니 한 번 읽어봐라....... 지인이 얘기한 산문집이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선택에 대한 고민까지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스스로가 우스워져 지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었다. 그저, 이제는 플로베르나 톨스토이의 재능이, 페이스북 글귀의 위로보다 매력이 없을 정도로 쓸모없어진 시대인가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내가 추천해주는 책들은 친구들이 다 거절하던데...
헬조선식 엔딩이 맘에 들었다
비단 독서뿐 아니라 사람들이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가 아닌가싶음.. 음악은 예외고
글 잘 쓰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