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2fa11d028314e80f1a897f13dffcb4827f132b6dbe865773e4adb25ca83185e6a61061595181e1658360e2e753a4f6c740faa9d005be0ea




가히 2000 년대 한국 최고의 시집 중 하나.

이 시집에 씌여진 시 대부분이 마스터피스급이라고 생각한다.

첫시집의 성취 때문에 이후 작품들에서 패망했다란 식으로 평가가 많이 나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작품만은 탁월하고 훌륭하다.


첫시집 출간 전 문학과지성사에서 까여서 문예중앙 시인선을 통해서 시집을 발표했는데

출간 후인 6년 뒤에 다시 문학과지성사가 판권을 사들여 R시인선으로 복간하기에 이르렀다.


독갤의 독자들이 시집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해서 종종 이렇게 올려볼려고 한다.

추천사가 극히 주관적일 수 있음을 주의할 것.


이 시집 속 좋아하는 작품 2편 올려보도록 하겠다.


-------------------------------------------------------------------------

 외계 - 김경주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 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

 내 워크맨 속 갠지스 - 김경주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 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 오는 골목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거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겨우 음악이 된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워크맨은 귓속에 몇천 년의 갠지스를 감고 돌리고 창틈으로 죽은 자들이 강물 속에서 꾸고 있는 꿈 냄새가 올라온다 혹은 그들이 살아서 미처 꾸지 못한 꿈 냄새가 도시의 창문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관의 말뚝에 매인 산양은 왜 밤새 우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 게스트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