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로스의 지성의 비물리성에 대한 논증>
http://www3.nd.edu/~afredd…/courses/…/ross-immateriality.pdf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철학을 계승하는 스콜라 학파 철학자들이 공유하는 모토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지성,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 이 비물질적이라는 것입니다.이로인해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 전통의 철학은 일종의 실체이원론을 주장합니다. 그것은 Hylemorphism 이라 불리는 견해입니다.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과 Hylemorphism이 다른점은, 전자는 기계론적 우주론을 받아들이지만 후자는 목적론적 우주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로스는 먼저 사울 크립키의 quus (커하기) 사고실험을 소개합니다. 사울 크립키는 그의 책 <비트겐슈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 에서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제안합니다.
<당신이 57보다 더 큰 수를 계산해 보지 않았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68+57”를 계산하라고 요청받았다. 자연스럽게, 당신은 “125” 라 답할 것이다. 그것이 옳은 계산이라는 점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 라는 기호가 덧셈이라는 기능을 지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립키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제시한다. 어떤 이상한 회의주의자가 와서 +가 의미하는 바가 덧셈이 정말 맞는지, 그리고 따라서 125가 답이 정말 맞는지 질문할 수 있다. 이 회의주의자가 질문하는 것은 “더하기’ 나 “+”라는 기호가 의미하는 바가 사실은 “quus” “커하기”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커하기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x quus y = x + y, if x, y < 57; = 5 otherwise.
따라서, 당신은 이제까지 덧셈 말고 “커하기” 를 한 것일 수 있다. 커하기와 더하기는 57보다 작은 숫자를 다룰 때 에는 동일한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8 + 57” 를 계산할 때 진짜 답은 5 일 수 있으며, 이제까지 “더하기” 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그러나 이 회의주의자가 틀리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회의주의자는 이제까지 더하기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가졌던 근거는 동일하게 커하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들어 “2 더하기 2 는 4이다” 가 “2 커하기 2는 4이다” 와 다르다고 누군가가 주장 할 지라도, 이때 문제시 되는 것은 “더하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더하기와 커하기를 구분하는 것은 계산결과물로 부터 도출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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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실험을 통해 제임스 로스는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제시합니다.
1. 모든 형식적 사고는 결정적이다.
2. 그 어떤 물리적 과정도 결정적일 수 없다
3. 따라서 그 어떤 형식적 사고도 물리적 과정일 수 없다.
여기서 “형식적 사고” 라는 것은 수학이나 논리에서 일어나는 형식적 사고과정을 말합니다. 더하기, 빼기나 혹은 논리에서 If P, then Q. P then Q 의 전건긍정의 형식 Modus Ponens 등을 이야기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결정적” 이라는 것이 기계론적 우주론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수학이나 논리의 룰 따르기의 형식이 어떻게 결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죠.
로스는 크립키의 커하기 사고실험을 통해 그 어떤 물리적 프로세스도 결정된 형식적 사고를 가질 수 없지만 우리의 생각이 바로 그러한 사고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물질과 인간의 지성이 존재론적 차이를 지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개별적인 물리적 프로세스라 볼 수 있는 컴퓨터 따위가 추상적인 형식적 사고를 \'입력\' 하지 않고서 그것을 실행할 수 있다고 보기가 어려우며, 따라서 개별자로써의 우리의 두뇌로써만 이 추상적인 형식적 사고를 실행할 수 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컴퓨터의 계산 과정이 어떤 특정적인 계산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에 무한하게 input을 넣어도 결국 더하기 인지 커하기 인지는 컴퓨터의 물리적 속성에 의하여 결정될 수 없습니다. 크립키의 비판은 input 과 output이 같으면 같은 심적 상태라고 볼 수 있다는 기능주의나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이 컴퓨터 처럼 계산가능한 것이라는 계산주의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로스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바로 우리의 생각이 형식적일 수 있으므로 형식성이 결정될 수 없는 물리적 프로세스와 존재론적 차이를 갖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 블로그는 내 블로그임
왜 이상한 의심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저 블로그의 주인이라서 내가 쓴 글을 복사해서 가져온다는 생각은 못해봤나?
http://blog.naver.com/chanchu1352/220964002384
저 블로그가 내것이라는 증명
이제 확인 했다면 저 글은 지울게.
난 충분히 물질/ 비물질 등의 개념을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너가 질문한 것에 대해서 내가 회피한 것이 있었나?
난 너가 한 말을 잘 이해를 못하겠다.
그렇지.
다른 속성의 차이가 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그것이지. 애초에 수학적 개념을 예시로 들고온 이유가 그것이었고.
나는 일단 너가 논리와 수학과 같은 것들이 자연법칙에서 도출된 것이라고 한것에 반대한다.
그 의미가 아니라는걸 명백히 설명하고 있는데.
" 여기서 “형식적 사고” 라는 것은 수학이나 논리에서 일어나는 형식적 사고과정을 말합니다. 더하기, 빼기나 혹은 논리에서 If P, then Q. P then Q 의 전건긍정의 형식 Modus Ponens 등을 이야기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결정적” 이라는 것이 기계론적 우주론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수학이나 논리의 룰 따르기의 형식이 어떻게 결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죠. " 전에 이야기 했듯이 + 가 더하기를 의미하는 것이 결정된다는 걸 의미함.
논리철학에서는 논리의 형식이 단지 인간이 그렇게 정해놓는것인지 플라톤적 이데아가 존재하는 것인지, 등등으로 연구를 하겠지. 그런데 문제는 넌 이걸 자연에서 찾는다는 건데, 그것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나는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겠네.
그래. 바로 의미의 부여, 그것을 문제삼는거야. 내가 + 를 더하기가 아니라 "커하기"의 의미로 삼는다 할 때, 과연 어떤 근거로 이 회의론자를 반박할 수 있는가라는거지.
바로 이것이 근본적으로 논리/수학은 규범성이 있는 학문, 즉 ~~해야 함의 속성을 전제하고 있는 학문이라고 내가 주장하고 있는 이유야.
그 어떤 형식도 상위의 형식으로 환원가능하다 했을 때, 그 상위의 형식이 왜 자연이어야 하나? 내가 볼때, 오히려 자연은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보편성이 있는 개념의 세계 보다도 하위의 세계인데.
물리법칙은 얼마든지 다를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데, 논리적인 모순은 상상할 수가 없잖아? 예컨대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총각이다>라는 논리적 명제가 틀린 경우를 상상할 수가 없지. 따라서 난 자연보다 논리가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너가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일 수 없다고 말하는거야. 자연은 과학이 파악하는 세계이지.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것이 물질이라고 믿는 유물론은 자연주의와 같은 의미로 사용이 되기도 해.
나는 논리나 수학같은 형식체계와 물리법칙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니 둘은 같은 체계에서 나온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거지.
우주나 물질보다 상위의 개념이면, 그것은 어떤 규칙이면서도 물질이 아니라는 의미인데?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은 물리법칙은 <우연적> 이고 논리나 수학은 <필연적> 이라는 차이를 갖고 있다는 점이지.
물리법칙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었어. 우주상수가 달랐다면 현재의 법칙과 다른 것이 존재했겠지. 그리고 그런것을 상상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아. 하지만 논리적 모순은 우리가 상상할 수 조차 없어. 그런 의미에서 필연적이지.
물리법칙이 다를 수 있었다는 것은 상상가능할 뿐만이 아니라 과학자들도 인정을 하는 것이야. 상상가능성=논리적 가능성은 그 반례를 찾기가 힘든 것 같은데. 난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은 실제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상상할 수 없는 것에는 이런 것들이 있겠지. 1. 컵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경우 2. 네모난 원
상상할 수 없는가 라는것이 단순히 능력부족이나 주체의 부재로 인해서인가 즉 우연적인 이유인가, 아니면 필연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가를 구분해야 겠지. 너가 제시한것은 전자같고.
1. 컵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경우 2. 네모난 원 와 같은 것들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믿음이라고 봐야겠지. 하지만 개념이 현실에 적용이 된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유지한다면 받아들일수 있는 믿음이지.
만약 그 어떤 모순이라도 현실에 존재할수가 있다면, 논리를 통해 무언가 현실세계의 사건을 통해 추론을 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한 행동이 되지.
하지만 그 대답은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고 있다. 도데체 왜 논리학 수학이 현실세계에서 쓸만한거지? 세계가 논리적일 필요가 없는데, 왜 잘 맞아떨어지냐는 질문에는 침묵하고 있다.
연역추론을 통해서도 우리는 자연에 대한 판단을 하고, 그 판단 결과는 우리가 관찰한 것과 어긋나지 않지. 이것의 의미는, 논리적 모순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당연히 증명은 못하겠지. 하지만 매우 상식적이고, 직관적이지. 논리적 모순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야. 넌 정말 컵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어?
네 말은, 우리가 계산기 처럼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판단이라 부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것인가?
그렇게 믿는 근거가 뭐지?
그럴수도 있다면, 너가 토론을 하고 주장을 하는 이유가 뭐야? 상반된 주장도 동시에 맞을 수도 있는데 말야.
무엇이 구현가능함이 동일성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아니지. 중국어방이라는 유명한 논제가 있는데, 만약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어느 방에 들어가서 주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 답변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어를 이해하고 답변하는 사람과 입력-출력된 값은 같지만 둘은 동일하지 않아.
여기 올린 내글도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어. 어느 기계가 더하기를 하는 것 같이 출력값을 내놓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말로 그것이 더하기를 하는지 커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어. 하지만 내가 더하기를 한다면 난 내가 더하기를 하는지 알고 있지.
기계의 알고리즘을 입력-출력값만 보고 무엇인지 알수 있나?
항상 n+1번째가 있는데?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더하기가 아니라 커하기일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모든 계산 프로세스에 적용이 가능하지. 모든 계산과정은 입-출력값만 보고 그것의 알고리즘을 알 수 없어.
하지만 나의 사고에서는 내가 더하기를 하는지 커하지를 하는지는 결정이 되어 있고, 알수 있지.
<만약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어느 방에 들어가서 주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 답변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어를 이해하고 답변하는 사람과 입력-출력된 값은 같지만 둘은 동일하지 않다.> 정말로 우리는 이 둘이 차이가 없다고 이해하나? 그렇지 않지. 전자는 이해를 갖고있지 않고 후자는 이해를 갖고 있어. 주어진 규칙대로 중국어를 읊은 사람은 중국어로 밥이 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중국어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
그 방 전체의 역할을 사람이 해본다고 가정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예를들어 중국어 규칙이 적힌 종이를 외워서 답을 내는것도 가능할꺼야. 하지만 그 경우에도 이해하진 못하고 있지.
왜 그런 결론이 나지? 중국어 방 사고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것은, 입출력이 같아도 우리가 <이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결론이지.
이건 개념이 필요한게 아니라, 그저 우리가 아는거지. 중국어를 이해하는 것. 중국어로 햄버거가 무엇인지 아는것. 중국어로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것.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도입한 개념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야.
처치-튜링 명제(Church-Turing thesis)는 계산가능한 함수에 대한 명제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어떤 함수는 튜링 기계가 계산할 수 있으면, 그리고 그 때만 알고리즘으로 계산 가능하다 명제이다. 알론조 처치와 앨런 튜링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튜링 기계는 모든 범용 프로그래밍 언어로 번역될 수 있으므로, 이것은 어떤 컴퓨터에게든 충분한 시간과 메모리가 주어진다면 존재하는 모든 알고리즘의 결과를 출력할 수 있다는 명제와 동치이다. 처음 이 명제가 나왔을 때에는 "효과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effectively computable) 함수"와 같이 비형식적인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명제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후 수학자들은 모호한 말 대신 계산가능한 함수를 사용한다.
실제로 증명되거나 반증된 적은 없으며, 영원히 증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다만 현재까지 인간이 발명한 모든 종류의 계산법(양자컴퓨터를 포함하여)이 적절한 형태의 튜링 기계로 표현될 수 있음이 알려져 있다.
<어떤 함수는 튜링 기계가 계산할 수 있으면, 그리고 그 때만 알고리즘으로 계산 가능하다 명제이다.> 이것은 어떤 함수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을 튜링기계가 계산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입력-출력값만 가지고 알고리즘을 추론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모든 알고리즘이 범용 튜링 기계 상에서 구현 가능하다 -> 동일한 입력에 대해 동일한 출력을 내놓는다면 두개의 알고리즘은 모두 동치의 프로그램이다.? 왜?
아니 입력과 출력이 같으면 왜 같냐고 물으니까 그냥 같다고 하네?
입력과 출력이 같아도 하나는 더하기를 연산중이고 다른 것은 커하기를 연산중일 수 있는데?
너가 말하는 것은 입력과 출력이 같으면 두 프로세스는 동일하다는 전제에 기초해 있는데, 그 전제가 더하기-커하기로 인해 반례가 생겼잖아.
그러면 입력과 출력이 동일한 것은 어떻게 확증을 하지? 무한번 시행해도 불가능한데?
지금 우리가 대상으로 삼고있는 것은 실제 존재하는 사물이지. 컴퓨터나 중국어 방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입출력 값을 판단하는 것은 관찰에 의거할 수 밖에 없지. 그리고 넌 그 관찰로도 충분히 동치가 된다는거고.
그래 영원히 끝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물리적 프로세스는 "비결정적이다" 라고 본문에서 말하는거지.
중국어방 실험은 얼마든지 실제로 만들수 있는데.
내 글에서 제시하는 바는 다음과 같았어. 1. 모든 형식적 사고는 결정적이다. 2. 그 어떤 물리적 과정도 결정적일 수 없다 3. 따라서 그 어떤 형식적 사고도 물리적 과정일 수 없다.
아니, 실제로 만들수 있어. 우선 방 안에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들어간다. 그 방에 필담을 할 수 있는 도구와, 미리 만들어 놓은 중국어 질문과 질문에 대한 대답 목록을 준비해 둔다. 이 방 안으로 중국인 심사관이 중국어로 질문을 써서 안으로 넣으면 방 안의 사람은 그것을 준비된 대응표에 따라 답변을 중국어로 써서 밖의 심사관에게 준다.
https://ko.wikipedia.org/wiki/중국어_방
< 우선 방 안에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들어간다. 그 방에 필담을 할 수 있는 도구와, 미리 만들어 놓은 중국어 질문과 질문에 대한 대답 목록을 준비해 둔다. 이 방 안으로 중국인 심사관이 중국어로 질문을 써서 안으로 넣으면 방 안의 사람은 그것을 준비된 대응표에 따라 답변을 중국어로 써서 밖의 심사관에게 준다.> 넌 이것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상황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아?
아니, 이 실험은 모든 질문을 묻는게 포인트가 아니라, 중국어 방의 사람이 중국어를 이해하지 않아도 중국어를 이해한 것 처럼 말할 수 있다는 거야. 이것은 마치 더하기-커하기인지 몰라도 더하기인것 처럼 보인다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 동치라는 것은 입력-출력이 같으면 동치라는 너의 믿음에 근거하고 있잖아. 넌 인간이 컴퓨터와 동일한지 아닌지 증명이 안되었다고 하지만 네 말에 따르면 이미 증명이 된거나 마찬가지야.
너는 동일한 입력-출력 값을 내놓으면 동치라고 했지. 만약 어떤 사람이 더하기를 하고 있다고 하고, 컴퓨터도 더하기라는 연산을 수행한다면, 컴퓨터는 인간과 동일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 되는거지. 즉 인간과 컴퓨터는 차이가 있다고 할수가 없게 된다.
아님. 인간이 확실하게 커하기가 아니라 더하기를 하고 있고, 컴퓨터에도 더하기라는 연산을 하도록 입력을 하면, 인간과 컴퓨터는 동일하다.
부울 논리식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그것을 인간이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인간과 컴퓨터는 동일하냐는 질문을 할 수 있겠네.
니들 뭐하냐?
그러니까 네 말에 따르면 이미 인간이나 컴퓨터나 동일하다는것이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입출력이 동일하게 만드는게 불가능하지 않잖아?
니들 무신론 갤로 꺼져. 왜 마이너 갤러리까지 찾아와서 개지랄이야.
그래 부울 논리식처럼 인간이 계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컴퓨터의 등식은 성립하냐?
넌 인간이 컴퓨터와 같은 것일 수 "도"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너가 말하는 전제에 이미 둘이 동일함이 포함이 되어 있다는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지. 난 부울 논리식으로 컴퓨터처럼 계산하겠다 라고 마음먹으면 되는거 아냐?
아니지. 너가 입력-출력값이 동일하면 동치다 라고 말한것에 이미 컴퓨터와 인간은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포함되어 있게되는거지. 즉 너의 전제 자체를 회의할 수 있다면 네 말이 "가정"이라는 것을 수긍할수 있는데, 넌 입력-출력값이 동일하면 동치다 라는것이 마치 부정할수 없는 진리처럼 이야기하잖아?
왜 다른 계산이 필요하지? 넌 입출력 값이 같으면 알고리즘이 같다고 이야기 했는데 말야.
그런 이야기는 안했지만, 그것을 근거로 삼고 주장을 했다는 것은 너가 그것을 참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지.
<인간의 사고와 컴퓨터의 알고리즘이 실제로 동치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증명을 위한 또 다른 계산이 필요해.> <동일한 입력에 대해 동일한 출력을 내놓는다면 두개의 알고리즘은 모두 동치의 프로그램이다> 이 두가지는 서로 상충되는 이야기 같은데?
그 계산이 왜 필요하지? 동일한 함수를 연산하게 만들면 동일한것이잖아. 컴퓨터가 더하기를 하도록 프로그래밍하고, 인간이 더하기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수학적 귀납은 과학의 귀납같은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연역의 일종아냐?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인간과 컴퓨터가 동일한 수학 식을 계산하는것이 가능하다/불가능하다 의 질문에 답변하면 좋겠는데.
우리가 하는 수학 계산을 컴퓨터에게 입력해서 하게 하는것이 가능하니까,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서 문제를 풀고 그러는거잖아. 그냥 인정할건 좀 인정하고 넘어가면 좋겠는데.
그 수학이라는 체계 자체가 귀납적으로 도출되었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것 같은데. 인간과 컴퓨터가 동일한 수학 식을 계산하는 것은 가능하다면, <같은 입력에 대해 항상 같은 출력을 내놓는 서로 다른 형식의 알고리즘들은 동치에 해당한다> 로 인해 컴퓨터와 인간은 동치라는거잖아.
무한한 경우를 테스트할 필요가 없지. 동일한 수학식을 계산한다는 것에서 이미 모든 경우에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것이 깔려있잖아.
우리가 무한한 경우를 테스트 할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입/출력 값만으로 더하기 커하기를 결정하는 것이고, 컴퓨터가 더하기를 연산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지.
수학 자체가 옳다는 말은 한적이 없고, 인간과 컴퓨터가 동일한 수학 식을 계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바로 그 의미가 양자가 동일한 출력을 내놓는다는 것이지.
동일한 출력을 내놓지 않는다면 둘은 동일한 수학식을 계산한 것이 아닐테니 말야.
그래 수학이든 뭐든 동일한 계산을 할수 있다는 것에 동의를 하지 않았나?
난 컴퓨터가 수학을 한다는 말은 한적이 없어. 확대해석은 하지 말길.
<인간과 컴퓨터가 동일한 수학 식을 계산하는 것은 가능해.> = <인간과 컴퓨터는 동일한 출력값을 내는 것이 가능해> 로 보이는데 말야.
그래 그러니까 네 말에 따르면 이미 컴퓨터와 인간은 동치냐는 것에 무슨 이유로 반대하냐는거야.
난 늦어서 자야겠다.
길어서 읽지 않았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글과 댓글을 읽다 보니 생각나는 것들이 좀 있는데, 나가봐야 해서 끼어들지 못하니 아쉽네요. 첫번째는 무엇이 <결정된다>는 의미에 대해서, 두번째는 <동치>와 <동일함>의 두 의미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입니다. 수학적 지식이 선험적 지식이냐는 토론도 생각나고.. 등등등.. 하여간 이런 문제는 돌고 돌고 하면서 계속 반복되는 거 같네요.. 용어만 조금씩 바꿔가면서. 이런 얘기는 그전에 철학갤러리에서 종종 올라와서 눈팅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요새는 별로 안 보이더군요. 아쉽습니다.
본문 맨 마지막 문단의 <<따라서 개별자로써의 우리의 두뇌로써만 이 추상적인 형식적 사고를 실행할 수 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죠.>> 여기서 "볼수가 없는"게 아니라 볼 수 있다고 해야 문맥에 맞는 거 같은데?
작은언덕님 오랜만입니다. 이전 철갤의 순한똥개입니다.
길어서 안읽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