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이야기한 동일한 주제에 대한 좀 더 정리된 논증임

<제임스 로스의 지성의 비물리성에 대한 논증>
http://www3.nd.edu/~afredd…/courses/…/ross-immateriality.pdf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철학을 계승하는 스콜라 학파 철학자들이 공유하는 모토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지성,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 이 비물질적이라는 것입니다.이로인해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 전통의 철학은 일종의 실체이원론을 주장합니다. 그것은 Hylemorphism 이라 불리는 견해입니다.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과 Hylemorphism이 다른점은, 전자는 기계론적 우주론을 받아들이지만 후자는 목적론적 우주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로스는 먼저 사울 크립키의 quus (커하기) 사고실험을 소개합니다. 사울 크립키는 그의 책 <비트겐슈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 에서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제안합니다.

<당신이 57보다 더 큰 수를 계산해 보지 않았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68+57”를 계산하라고 요청받았다. 자연스럽게, 당신은 “125” 라 답할 것이다. 그것이 옳은 계산이라는 점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 라는 기호가 덧셈이라는 기능을 지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립키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제시한다. 어떤 이상한 회의주의자가 와서 +가 의미하는 바가 덧셈이 정말 맞는지, 그리고 따라서 125가 답이 정말 맞는지 질문할 수 있다. 이 회의주의자가 질문하는 것은 “더하기’ 나 “+”라는 기호가 의미하는 바가 사실은 “quus” “커하기”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커하기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x quus y = x + y, if x, y < 57; = 5 otherwise.

따라서, 당신은 이제까지 덧셈 말고 “커하기” 를 한 것일 수 있다. 커하기와 더하기는 57보다 작은 숫자를 다룰 때 에는 동일한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8 + 57” 를 계산할 때 진짜 답은 5 일 수 있으며, 이제까지 “더하기” 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그러나 이 회의주의자가 틀리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회의주의자는 이제까지 더하기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가졌던 근거는 동일하게 커하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들어 “2 더하기 2 는 4이다” 가 “2 커하기 2는 4이다” 와 다르다고 누군가가 주장 할 지라도, 이때 문제시 되는 것은 “더하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더하기와 커하기를 구분하는 것은 계산결과물로 부터 도출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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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실험을 통해 제임스 로스는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제시합니다.
1. 모든 형식적 사고는 결정적이다.
2. 그 어떤 물리적 과정도 결정적일 수 없다
3. 따라서 그 어떤 형식적 사고도 물리적 과정일 수 없다.

여기서 “형식적 사고” 라는 것은 수학이나 논리에서 일어나는 형식적 사고과정을 말합니다. 더하기, 빼기나 혹은 논리에서 If P, then Q. P then Q 의 전건긍정의 형식 Modus Ponens 등을 이야기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결정적” 이라는 것이 기계론적 우주론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수학이나 논리의 룰 따르기의 형식이 어떻게 결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죠.

로스는 크립키의 커하기 사고실험을 통해 그 어떤 물리적 프로세스도 결정된 형식적 사고를 가질 수 없지만 우리의 생각이 바로 그러한 사고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물질과 인간의 지성이 존재론적 차이를 지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개별적인 물리적 프로세스라 볼 수 있는 컴퓨터 따위가 추상적인 형식적 사고를 \'입력\' 하지 않고서 그것을 실행할 수 있다고 보기가 어려우며, 따라서 개별자로써의 우리의 두뇌로써만 이 추상적인 형식적 사고를 실행할 수 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컴퓨터의 계산 과정이 어떤 특정적인 계산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에 무한하게 input을 넣어도 결국 더하기 인지 커하기 인지는 컴퓨터의 물리적 속성에 의하여 결정될 수 없습니다. 크립키의 비판은 input 과 output이 같으면 같은 심적 상태라고 볼 수 있다는 기능주의나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이 컴퓨터 처럼 계산가능한 것이라는 계산주의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로스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바로 우리의 생각이 형식적일 수 있으므로 형식성이 결정될 수 없는 물리적 프로세스와 존재론적 차이를 갖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