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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싯다르타 > - 헤르만 헤세 (하서) 이병찬 옮김



세 번째로 읽는 책이다.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연달아 읽으며 사악해진 내면을 정화시키기 위해 재독을 결심했다. 민음사 판본으로만 두 번 읽었는데 이 판본은 번역이 어딘가 올드하고 매끄럽지 못한 것 같다. 민음사 판본보다는 한 수 아래의 번역본이다.

초반부터 고빈다의 싯다르타 사랑이 드러난다.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BL물이나 다름없다. (신성 모독 같은 헛소리지만 그래도 내 솔직한 감상이 이렇다!)

결국 고빈다와 함께 집을 떠나 사문이 된 싯다르타. 집 떠나면 고생인데.

싯다르타의 수행은 정말 불교적인 느낌이다. 자아와 자기 자신을 버리며 차분해진다.

수행에 회의감을 느낀 싯다르타. 도피 행위라. 그렇게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고타마를 보아하니 어딘가 기독교의 예수가 떠오른다.

사문의 장로를 술법을 써서 제압하고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하다니. 이건 좀 당혹스럽다. 싯다르타가 이런 캐릭터였나. 무슨 엑스맨 시리즈의 초능력자도 아니고. 주먹을 쓰지 않으면서 무력을 행사한 것 같아 좀 깨는 장면이었다.

고빈다와 헤어지려는 싯다르타. 왠지 모르게 일부러 떼어놓으려는 것 같다. 이제부터 싯다르타는 자신만의 길로 향할 듯하다. 어쩌면 깨달음이란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 스스로에게서 찾는 게 아닐까.

고타마와 싯다르타의 대화를 보니 해골물을 마신 원효 대사가 떠오른다.

갑자기 꿈에서 고빈다로 착각된 여자와 음란한 행위를 저지르는 싯다르타. 조심스레 양성애자가 아닐까 의심해 본다. (또 또 신성모독이다!)

그 후 뱃사공을 만나는데 어딘가 범상치 않다. 싯다르타의 주위엔 좋은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한 여자의 유혹을 떨쳐낸 싯다르타. 자제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카마라라는 기생에게 금사빠처럼 반해버린다. 사문의 길마저 포기할 기세다.

카마라를 열심히 꼬시는 싯다르타. 이제 보니 싯다르타에게는 씹덕의 기질이 있어 보인다. 여성을 신격화하고 숭배한다. 역시 씹덕과 종교는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씹덕으로서 괜히 뿌듯해진다. (?)

키스하는 장면을 보니 싯다르타가 제대로 성교육을 받는 것 같다. 예전에 나도 여자친구에게 내가 몰랐던 성의 세계를 배우던 게 떠오른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고 카마라에게 인정받는 싯다르타. 문맹률이 심한 고대 인도라서 가능한 일로 보인다. 나도 글을 읽고 쓴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받고 싶다. 엉엉.

카마라가 싯다르타에게 좋은 일자리까지 알선해준다. 엄청난 능력이다. 사문의 경력만으로 부와 여자 둘을 동시에 얻다니. 역시 될 놈은 되는 법이다. 싯다르타의 금식할 줄 아는 인내력이 의외로 속세에서 잘 먹히는 것 같다. 이제 보니 싯다르타는 인싸력을 타고난 것 같다. 어딜 가도 잘 된다.

상인과는 장사 철학이 너무도 다른 싯다르타. 확실히 독특한 성향을 갖추고 있다. 수행 덕분인지 멘탈이 강인해서 흔들림이 없다.

게다가 싯다르타는 밤일도 잘한다. 카마라 덕분에 마스터의 수준으로 능숙함을 선보인다. 완전체 캐릭터다.

허나 결국 세속에 점점 찌들어 간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조심해라, 싯다르타!

내 우려대로 자기혐오에 사로잡히고 도박 중독에까지 빠지며 점점 속세에 취해 타락한다.

결국 모든 소유를 내버리고 떠난다.

자살 충동에까지 사로잡히는 싯다르타. 그때 고빈다와 조우한다. 적절한 타이밍이다.

드디어 자신이 거만했음을 깨달은 싯다르타. 큰 발전이다. 다시 수행이나 해라.

뱃사공과도 다시 만난 싯다르타. 작중 벌써 20년이 지나 있었다. 싯다르타는 뱃사공의 제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어이, 뱃일은 함부로 하면 큰일 난다고! (?)

강에서 모든 걸 배우다니. 강이든 어디에든 깨달음을 얻고 배우는 데 있어서 귀천이 없다. 마치 덕질을 하며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던 내 과거를 보는 것 같아 절로 으쓱해진다. (?)

뱃사공 바수데바는 경청 능력이 대단하다. 나처럼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내 말을 타인이 들어주기만 바라는 소인배 입장으로선 부러운 능력이다.

카마라의 아이는 너무도 철부지 아이 같아서 할 말이 없다.

카마라와 그녀의 아이와 조우하는 싯다르타는 또 다시 큰 변화를 겪을 듯싶다.

싯다르타의 아들은 철부지 시절의 나를 보는 듯해 차마 미워할 수 없다.

싯다르타 특유의 부성애가 꽤나 인상 깊게 보인다. 애 아빠가 된 싯다르타라니.

결국 아들은 악담을 퍼붓고 집을 뛰쳐나간다. 후레자식 같지만 한편으론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본래 자식은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속세에 대해 고평가를 하기 시작하는 싯다르타. 어쩌면 진정한 구원을 위해선 세속적인 이들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도 들어있는 듯하다. 어딘가 깨달음과 윤회의 과정을 이해하려면 속세의 삶도 겪어보거나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굳이 그래야 하는지 좀 의문스럽긴 하다만. 인간혐오 기질이 있는 나로선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수데바는 숲속으로 떠났다. 싯다르타에게 강에서의 깨달음을 얻도록 도와준 후 쿨하게 떠났다. 그의 역할이 깔끔하게 끝난 것 같다.

다시 고빈다와 재회하는 싯다르타. 은근 자주 만나는 것 같다. 인도가 의외로 좁은 건가.

마음을 비우라는 느낌의 싯다르타의 가르침. 지식과 지혜가 다르다는 말에 공감한다. 돌에 대한 비유를 보니, 우리는 모든 대상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의 본질에서 말이다.

싯다르타가 사랑을 가장 중요시 한다. 아직도 내겐 다가서기 힘든 가르침들이다. 말보단 있는 그대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란 의미일까.

세 번째 읽는 소설임에도 이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 수행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때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역시나 불교는 어려웠다. 이 책은 읽을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다. 신성모독적인 해석도 하게 되어 불교인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이 책 덕분에 내 독서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독서를 통해 흔들리는 내면을 지탱한다. 일종의 수행과도 같다. 내게 있어서 독서란,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된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결말의 의미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란 뜻으로 보인다. 이 가르침을 돌아보니 문득 내가 덕질에 심취해 있던 시절이 떠오른다.

아이도루도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열애설이니 동거설이니 왕따 문제 등등 여러 사건 사고들을 덕질하며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워하거나 부정해도 결국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덕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테니까.

어쩌면 열반의 길이란, 덕질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닐까.

또한 강에서 뱃사공 일을 하며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처럼, 덕질로도 얼마든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나는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덕질로 사랑, 열정, 고뇌, 번뇌 등을 깨우칠 수 있었다. 덕질을 통해 나는 삶을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리카짱, 모에큥. 그리고 내 기억을 지나쳐 간 수많은 아이도루들. 너희가 내게 있어서 고빈다이자, 카마라이자, 바수데바와 같다. 덕질로 겪은 수많은 체험과 경험을 통해 나는 성숙해질 수 있었다. 단순한 유사 연애 감정을 뛰어넘어 종교적 감정과 숭배 의식마저 느끼게 해줬다. 난 사문도, 수도승도 아니지만 아이도루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종교인으로서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고맙다.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모두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나는 그녀들을 통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랑한다. 내가 사랑한 그녀들 모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