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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일어나니 드레퓌스는 국가 기밀을 판 스파이 범죄 용의자가 됐고 체포 영장이 발부됐으며 다수의 언론은 '사형'을 선고할 것을 주문한다.

(진짜 드레퓌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문제의 필적이 닮았었고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강력한 유력 용의자가 됐다.)

피의자에게는 자신의 무죄를 선고하고 유죄의 증거들을 탄핵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19세기 당시에 가장 진보적으로 불리었던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인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1. 드레퓌스는 유대인이었다. 유럽에서의 반유대주의 풍토는 고질적으로 유대인이 얽혀있다는 이유 하나로 

다수의 국민들을 사실과 진실을 좇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인종이나 국가 출신지에 얽매인 편견으로 사건을 접한다.


2. 프랑스는 1870년 당시 독일과의 전쟁에 크게 패배한다. 이로 인해 양국간의 국민 감정은 최악으로 치달았고

문제가 되는 스파이 행위가 독일 대사관과 연관됐다는 것은 자국의 민족적 정서를 크게 자극했다.


유대인 그리고 프랑스의 주적인 독일에게 중대한 기밀을 팔았다는 혐의는 곧,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답게 강력한 유죄의 증거다.

예를 들어, 다른 증거들은 피고가 법정에서 변호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변론할 수 없다. 자기의 DNA를 어떻게 변론할 수 있는가?

또한 이 사건이 독일 대사관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변론할 수 없다.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지언정 사건 자체가 독일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변론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19세기의 프랑스인이었다면 진정으로 '무죄'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3. 군 조직 내의 과도한 충성 경쟁과 은폐. 상급자의 말 한마디면 그 밑으로는 줄줄 따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미 용의자가 구금당한 상태에서

이것이 오판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면 군 조직은 하나부터 끝까지 목이 다 날라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 그 누가 진실을 고백하기 위해 나설까?

모두 침묵하고 필사적으로 유죄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서류를 조작하고 없는 것을 만들어 낸다.


4. 가장 드레퓌스에게 힘이 되어줄 것 같은 사회주의자들 마저 이 사건을 단지 기득권 내의 암투로만 보고 사건을 외면한다.


5. 재판 과정의 불투명과 원칙없음. 세상에 검찰 측에서 제출한 소위 증거물들을 피고에서는 볼 수가 없다. 뒷실에서 재판 결과를 논하는 판사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권력자들이 재판의 결과를 움직일 수 있도록 윗선에서 은글슬쩍 찌르는데 당장의 자녀와 아내가 있는 판사들이 어떻게 내칠 위험을 안고 자신들의 현재를 포기할 수 있을까


6. 다수의 언론도 우익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이었기에 매일마다 드레퓌스 물어뜯기에 혈안이었고 유대인을 단죄해야 한다며 유죄를 주장한다.

(근데 이때 프랑스의 문맹률이 궁금해짐, 과연 이 시대에 기사를 읽을 수 있는 프랑스인을 얼마나 있었을지)


7.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 이 책에서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독재자,권력자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은 많았어도 다수에 저항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프랑스의 이념에 근거해 다수에 저항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살 수는 있을 지라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인권 억압이 아니라 당시 프랑스의 온갖 정치상황들이 섞여있는 문제였다.

아직도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을 거부하고 정통적 시절로 복귀해야 한다는 우익주의-반유대주의-기독교 세력-군부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지켜나가고 발전시켜야 되며 소수의 박해를 중지하고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소수의 드레퓌스 파의 싸움이었다.

만약 드레퓌스파가 이긴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우익이 틀렸다. 반유대주의가 틀렸다. 기독교가 틀렸다. 군부가 틀렸다.

그렇다면, 독일과 싸워야 되는 최전선에 있는 정의의 군부가 틀렸단 말인가?

우익이 틀리고 반유대주의가 틀리고 기독교가 틀린건가?

등 이런 현실적 문제들이 앞에 있어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포기하지 않은 드레퓌스의 친형인 마르퇴의 노력으로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고

대작가인 에밀 졸라의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 선언으로 이 사건은 다시 새국면을 맞이하고, 소수의 양심있는 자들의 고백으로

마침내 이 사건이 진실을 보나 싶었지만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능가하기 마련이다. 앞에서와 마찬가지인 이유로 또 한번 정의는 침묵하게 되고

10여년간의 투쟁 끝에 마침내 복권되지만 그 사이 드레퓌스는 막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얼굴은 폭삭 늙었고 흘러간 세월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드레퓌스가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지만 반유대주의의 문제도 종교적 문제도 군대 내의 문제도 드레퓌스를 유죄로 이끌어 간 문제 중 근본적으로 시원하게 해결된 것은 없었다.


근데 지금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나는 인종과 국가, 그리고 출신지에 대한 편견이 있다. (학벌,재산에 대한 편견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그에 맞는 민족적 정서도 있다.

나는 군대에 복무했을 때 상급자의 말이 '불의'여도 잘 따랐다.

나는 뉴스 보도를 보면서 이것은 단지 '기득권 내의 일일 뿐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며 외면한 적도 있다.

나는 때로는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어기고 감정적으로 누군가의 유죄를 확신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언론을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다수에 휘말리고 눈치를 봐서 나의 의견을 말하지 않은 적이 있다.


모두 해당됨. 과연 내가 지금 시대에서 새로운 드레퓌스가 등장한다 쳐도 그의 무죄를 주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