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기억만이 중요하다...그것과 세계가 불타는 걸 지켜보는 것....네가 잃은 모든 사람들....너의 산산조각난 친구들....괜찮던 녀석들....괜찮지 않던 녀석들.....>
프루스트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셀린 또한 프루스트가 그러했듯, 지나간 기억에 집착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소설화하지만, 시간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실제로 흘러갔던 시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재구성하고, 왜곡하고, 바꾸어놓는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외려 소설 속에서 외친다, 실제로 일어난 일과 다르잖아, 라고 외치는 모든 이들에게 엿이나 먹으라고. 아니, 폭격 속에서 구워지고, 튀겨지라고 비웃는다.
그러면 그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추잡한 자기 변명이나 작가로서 다시 명성을 되찾기 위한 발버둥도 물론 큰 자리를 차지하지만, 시종일관 일관되게, 역시나 '죽음', 혹은 죽음성애가 아닐까?
이미 <밤 끝으로의 여행>으로 루이-페르디낭 데투슈는 루이-페르디낭 셀린으로 명성을 남겼고, 또 그와 동시에 악명을 남겼다.
작가로서의 대성공 이후, 그는 공공연하게 유대인 혐오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팜플랫들을 저술하였으며 2차 대전 중 나치와 비시 정부에 협력하였고, 이로 인하여 덴마크로 도주까지 감행하지만, 끝내 옥살이를 겪고, 작가로서도 아무도 관심받지 않는 자가 되어버린다.
셀린의 작품 세계를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면, <밤 끝으로의 여행>으로 대표되는 전기와 달리, 그의 후기 세계관은 2차 대전 이후, 어떻게든 다시 작가로서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시도, 다시 <밤 끝으로의 여행>같은 파격성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노르망스>는 그러한 시작에 가까운 작품이다. 원래 <다른 시대를 위한 우화>2부작을 셀린은 서술하며 출판하였고, 그 중 <노르망스>는 그 2부에 해당된다.
전기 셀린과 후기 셀린의 차이점이야 학자들이 설명하겠지만, 역시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유무가 체감된다. 문체적으로도 이제는 거의 끝없이, 모든 걸 이으려는 듯 연속되는 '........'의 사용이 유별나게 보이는데, 생각 외로 가독성을 해치진 않는다. 오히려, 번역에서도 느껴지는 셀린의 요설스러운 문체를 돋보이게 만들 정도로.
<노르망스>는 배경적으로 1944년 몽마르뜨 폭격의 한 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밤 끝으로의 여행>에선 적어도 어떠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배경이 있던 것과 달리, <노르망스>에선 그 경계가 사실상 사라진다.
쉴 새 없이 폭격의 야만적인 현장에서 일어나는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으려는 자들이 벌이는 난장판을 이야기가 묘사하고, 또 그걸 체감이라고 시켜주려는 듯, 모든 것은 정신 없다.
사실상 이 책에서 어떠한 이야기는 딱히 진행되지도 않고, 독자가 느끼는 장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셀린, 혹은 페르디낭으로 불리는 화자의 정신없는 독백과 그가 이따금 듣고, 맞고, 느끼는 것들 뿐이다.
이와 더불어, 더욱 심해진 것은 셀린의 혐오와 증오다. 이제 그는 쉴 새 없이 증오를 내뿜는 이가 되었고, 모든 것은 야만적이고, 또 그렇기에 왠지 모르게 희극적이면서 그렇기에 더욱 잔혹하게 느껴진다.
폭격의 현장 속에서 의사인 자신을 찾아 정신 없이 외치는 생존자들이나, 때론 악역처럼 구타하고, 정신없이 뒤흔드는 노르망스와 일가.
끝없이 묘사되는 폭격 소리와 비행기, 그리고 지옥불처럼 묘사되는 불꽃들.
<잿더미가 된 잔해에 대해 나는 조금 알고 있지...그걸 구별하는 건 정말로 예술이야, 모두 회색에 쪼그라들어 상자에 담긴 쥘보다도 작을 뿐이지...그리고 만약 그들이 화상을 잆었을 뿐이라면? .....그럼 가장 섬세한 작업이지!....1도....2도....3도 화상!....비명....모르핀....연고...모두가 쪼그라든채 겉으론 회색빛일 거야...내가 그들을 구별해야해! 묘지에서 내가 그들을 구별해야겠지! 마그네슘 연소의 효과라...나 혼자 검시를 해야겠지...내가 그들을 열어재낄 거야...흉곽을 가르며! 부서진 갈비뼈...그들의 폐도 모두 회색이겠지...
만약 아래의 불꽃이 쥘을 집어삼킨다면, 녀석도 회색으로 불타버리겠지...잘린 팔, 머리카락, 눈, 곤돌라! 어린 왕자와 함께 오븐 속으로! 너도 정말 볼만하다고 생각할 거야.>
쉴 새 없이 뒤섞이는 욕설과 증오들. 차라리 모두가, 자신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불에 구워지라고 외치는 셀린의 조롱은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사실, 셀린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여러모로 모순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역사에게 책임이 있다! 난 네게 이 역사를 빚지고 있어! 여기 난 아파트 안에 있었지, 내던져지고 요동치면서...다른 곳은 없었어! ....나는 널 잘못된 곳으로 이끌 거나 거짓말하려는 것이 아니야! ......비극이지!>
정신착란이라도 일으킨 듯, 때론 이 모든 것이 그저 상상의 산물이라는 듯 조롱하면서도 '역사'를 강조하며 비극을 강조하는 그는 무엇을 원하고, 또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자 하는 것인가?
하룻밤의 폭격 속에서 일어나는 이 종말론적인 희극에서 사실 그런 생각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셀린의 요사스러운 문자들의 나열들을 느끼는 것이 가장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첫 작품에서부터 일관되게 집착하는 죽음 그 자체가 어떻게 수도 없이 변주되고, 증오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이 책을 소개하는 어떤 이는, 사실 이 책을 읽을 독자라면, 이미 셀린에게 충분히 익숙하기에 내용이나 줄거리는 필요없을 것이라고 했더라.
틀린 말은 아니다.
셀린의 후기작을 접하려면, 사실 조금 더 정돈되고, 더 잘 쓰인, 이 다음에 쓰인 그의 독일 <삼부작>을 접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성에서 성으로><북쪽><리고동> 3부작은 <노르망스> 이후, 셀린의 나치 패망 후 덴마크 도주에 관한 기록이다)
물론 그는 혐오스러운 인간이고, 국내엔 아직까지 거의 소개가 되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요설스러운 문체는 훗날 비트 세대나 헨리 밀러, 필립 로스, 심지어 커트 보니거트까지 영향을 받고, 존경한다고 말하였으니,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셀린을 읽지 않아도 그를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셀린의 문체와 작품에 가장 가깝다고 여긴 것은 필립 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인데, 유대인을 혐오한 그를 훌륭하게 모방한 것이 유대인 작가라는 점은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실이다, 정확히.....>
물론 이는 우리의 페르디낭 데투슈가 이 폭격극을 끝내며 마지막까지 강조한 것처럼, 정확한 사실이다.
- 워크룸에서 나온다는 셀린 선집 do...JOHN....BURR....
그래서 베케트 어떻게되냐구 ㅜ 그것부터좀 - dc App
성에서 성으로에 나오는 강아지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찰지다던데 빨리 번역 나오길 기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