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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역사책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찾아 읽다보면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마르크스 주의자 '이매뉴얼 윌러스틴'입니다. 리오리엔트의 안드레 군더 프랑크나 대분기의 케네스 포메란츠, 2차대전 관련 티모시 스나이더나 경제사가 데이비드 란데스, 잡학사가(!) 니얼 퍼거슨 등 근대를 다루는 역사가들 책에 늘 등장하는 이름이죠. 사회학자인지 역사학자인지 진퉁 마르크스주의자인지 사전정보 없이 그냥 책을 읽었습니다.
총 4권으로 된 책을 간략이 설명하면, 아프리카 전문 연구자였던 윌러스틴은 서유럽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강성해진 시기가 언제이며 원인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략 1450년에서 1650년에 근대적인 세계체제가 형성됩니다. 이때 유럽은 다양한 이유로 장기적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그 돌파구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은 소위 절대왕정으로 알려진 권력집중 방식으로 탑-다운 형식의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이러한 강력한 국가의 후원을 받는 주식회사들이 대항해시대라고 불리우는 발견과 탐험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로부터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유럽은 경제위기를 벗어나게 된다는게 '근대세계체제' 1권의 내용입니다.
윌러스틴은 서유럽을 '중심'으로 놓고 나머지 '주변'들 사이에 착취와 종속의 유형화를 시도합니다. 유럽과 인접해있으나 산업화와 집중화가 더뎠던 중부유럽과 동유럽은 '반-주변부'로 명명하구요. 중심, 반주변, 주변의 개념으로 세계 지역을 서열화하는 윌러스틴의 방식은 부르주아지, 쁘띠-부르주아지, 프롤레타리아의 관계를 설정했던 마르스크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물론 스페인처럼 반-주변부로 쇠락하는 지역과 북아메리카처럼 중심으로 도약하는 국가를 예로들며 저자는 이런 구분이 고정적이지 않다는걸 강조합니다. 마르크스주의자 답게 윌러스틴은 자본주의 내부에서의 반복적 위기는 새로운 시장을 계속 찾게 하고 그 유지를 위해 자원(착취)도 지속적으로 필요하기에 주변부에 대한 확장의 압력이 기존의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그 이후의 후배 역사가들에게 엄청 두드려 맞습니다만- 어쨌든 책에서 제시하는 세계적 발전에 대한 윌러스틴의 상호의존적 유형화는 그 이후의 사회-역사가들에게 하나의 아르케-타입으로 작동합니다.
제가 추천하는 3,4권의 내용은 다시 유럽으로 돌아갑니다. 많은 근현대사 관련 책들의 고전적 질문이기도 하죠.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왜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나머지 세계를 식민화했는가?'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유럽-미국이 지난 5세기에 걸쳐 세계를 물질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내용입니다.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등의 책이 최근에 나오기도 했죠.
만약 서구 문화의 긍정적 특성, 예컨대 창의력, 개인주의, 근면성, 계몽적 사법 및 정치기구의 점진적 증가로 인한 안정적 정치참여 등이 서양-헤게모니에 영향을 줬다면 그러한 배경에는 어떤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가를 추적하는게 윌러스틴의 방대한 작업인 셈입니다. 3권에서는 산업혁명이 갑자기 튀어나온 결과가 아니라 영국이 중심부로의 이점을 충분히 누리고 있었다는 점, 주변부 쟁탈전에서의 패배로 프랑스에서 혁명이 촉발되었다는 의견 등 일련의 사건들의 연속성을 강조합니다. 4권에서는 특히 그 결과 출범한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 사례를 분석하며 이데올로기로서의 중도적 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윌러스틴의 책에 대한 카운터 펀치는 워낙 다양하게 나와있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독서한 책은 2000년에 나온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 - 유럽,중국, 그리고 근대 세계체제의 형성'입니다. 많은 경제사가들이 유럽의 기적, 대분기라고 부르는 약 수세기에 걸친 유럽지배의 신화에 대해 유럽중심의 역사기술, 제도적-문화적-지리적 예외주의에 반대하며 포메란츠는 1750년대 이후에나 유럽이 중국을 간신히 앞서기 시작했고 이렇게 앞선 이유조차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지루하지만 의미있는 책이에요.
어쨌든 이매뉴얼 윌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는 어떻게 유럽, 북아메리카가 다른 지역보다 일찍 자본주의같은 '여기에' 혹은 제국주의같은 '거기에' 도달했는가를 설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서양 헤게모니라고 비판받는 윌러스틴 조차 당대에는 유럽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던 소장파였다는게 흥미롭죠. 내용은 좀 진부할 수 있는데 문장의 구성과 곳곳에 등장하는 문학적 수사들이 읽는 맛을 제대로 살려줍니다. 과연 당대의 학자 답다는 생각입니다.
어렵다... 그치만 양질의 리뷰가 올라오네
포메란츠의 대분기는 진짜 번역이 개판임. 이해안되서 뭐지싶었다가 원서보고 이해한 유일한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