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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오래된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길다. 그 이름을 다 부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평생이 필요하다. p.12
인간의 언어에 대한 설명으로 이보다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한국어, 영어, 중국어, 라틴어 등등. 언어의 이름은 한없이 간단명료하게 보이지만 각각은 인류의 문화를, 깊이를 알 수 없는 통에 담아 놓은 듯 복잡한 사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생과 사를 다룬 ‘침묵의 미래’에서 김애란은 언어의 죽음에 더 집중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같은 분위기를 언어로 형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빙하가 무너지는 풍경과 비슷했다. 수백만 년 이상 한자리에 태연하고 엄연하게 존재하다 우르르ㅡ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얼음의 표정과 흡사했다.
... 중략 ...
세상에 아무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는 멸망, 어색한 침몰을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그가 눈을 감자 세상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고요에 휩싸였다.p.31
언어의 죽음은 침묵이다. 그리고 고독이다. 아무도 그 언어를 다시 말하지 않겠지만 인간은 다른 언어를 사용할 것이다. 그래서 고독이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간절히 바라는 외로운 인간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죽을 때가 돼서야 생기는 욕망을 언어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술과 역사와 노래가 담긴 콤팩트디스크는 현장에서 특별할인가에 판매됐다. p.20
책에서 언어는 죽어도 콤팩트디스크에 담아 팔리기도 했다. 죽어 관에 들어가는 인간의 몸뚱이와는 조금 다르게. 흡사 영혼을 넣어 놓듯이. 인간의 영혼도 어딘가에 담길 수 있을까? 본문의 화자가 언어라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소름끼치는 일이다. 말하자면 동지들을 넓적한 원반에 담아 파는 일을 목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박물관 밖으로 나가면 언덕 너머로 이러한 콤팩트디스크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 즐비해 있다고 한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을 배터리로 쓰기 위해 관리하던 기계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설정이다. 인간은 없어져가는 언어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판매하고 소장하려한다. 언어의 본질이 인류의 입에서 터져 나와 쓰여 지는 것이라 생각하면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수집품으로써의 역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형태로 그려진 것이다.
침묵의 미래는 인간이 침묵하게 된 이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언어 본질에 대한 뒤틀림과 언어를 대하는 인간의 오만한 태도, 사라져가는 언어를 바라보는 언어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폭력들. 특히 특정 언어만 골라져 살아갈 수 있는 ‘다수 언어’의 ‘소수 언어’에 대한 폭력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 김애란이 이토록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풍길 줄 몰랐다고 고백하고 싶다. 마냥 착하고 따뜻한 유쾌함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작가의 ‘침묵의 미래를 이렇게 상상하고 있었어요’라는 고백을 한 편의 성서로 써낸 듯한 작품이었다.
*본 작품은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돼 있습니다
13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ㅇㅋ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