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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순간, 이미지는 왜곡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면, 그 순간에는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리나, 갈수록 기억들 간의 연결이 이상하고 알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확신을 얻기 위해 일기장을 들춰봐도 기억에 없던 사건들을 나열하며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순간, 우리는 왜곡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비톨트 곰브로비치는 《코스모스》 를 쓰며 이런 질문에 매달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사물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정말인가? 이전에 이 질문에서 가장 먼 곳 까지 나아가 소설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제된 이미지의 가공, 즉, 우리가 어떤 명료하고 논리적인 생각을 가질 것이다라는 생각에 조이스는 반기를 든다. 그렇게 그가 창조한 소설 속에는 체계없이 나열되는 의식의 흐름이, 한 사람의 사고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구조물로서 존재한다.
곰브로비치는 약간 방향은 다르나, 조이스와 비슷하게 나아간다. 《코스모스》 속 주인공 또한 주변에서 발견한 사소한 물건과 사건으로부터 사유를 전개해 나간다. 차이점이라면, 조이스에 비해 곰브로비치는 더욱 사소하고 의미 없는 물건들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매달린 참새, 매달린 벽돌, 여인의 손, 갈퀴의 방향, 책상 위의 흠집 등 별 상관없는 사물들은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며 진지한 성찰 속에 던져진다. 제목 그대로 사물들 간의 ‘코스모스’가 구축된다. 조이스가 사고에 들어오는 물건들에 어느 정도 차등의 지위를 부여했다면, 곰브로비치는 이 지위마저 부정한다. 그가 생각했을 때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사고에 들어온 순간,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왜곡하며 하나의 체계로, 하나의 거대한 내면의 우주로 발전해간다.
카프카는 문학이 내면의 얼음을 깨부수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가. 그렇다면 곰브로비치는 이를 아주 잘 해냈다(물론 그는 카프카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싫어하던 대상과의 미학적 유사성이라는 현상은 흥이롭고, 또, 놀랍다.). 우리는 언제나 큼짐큼직하고 중요한, 진지한 대상들이 우리의 사고를 점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대상에 관계없이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집중했던 모든 사물들이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작가인가 보네
상당히 괜찮게 읽음
곰브로비치 쩔지 ㅇㅇ 코스모스는 미학+재미 둘 다 잡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