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갤이 흥갤로 변한 뒤, 유입 중에 책 읽으면 무엇이 남냐고 묻는 애들이 많이 보이길래 씀.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함. 그러니 내 말이 개소리 같다 싶으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음.


내 생각에 읽는다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뉨. 단순한 읽기와 정교한 읽기임.

단순한 읽기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지지 않는 읽기를 말함. 저자의 말에 의심을 가지거나 그 너머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에 잘 넘어가게 되는 읽기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읽음. 

단순한 읽기의 장점은 단시간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있음. 아무리 대충 읽어도 기억나는 건 있음. 문제는 그 기억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거임.

단순한 읽기의 단점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기억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거임. 나는 단순한 읽기를 했을 때, 잠 한 번 자고 일어나면 머릿속에 담긴 내용의 70% 정도가 사라져 있음. 저자가 중심적으로 말한 건 기억이 나는데, 그 중심적인 내용의 근거가 무엇인지 기억이 안 남.


그렇다면 정교한 읽기는 무엇이냐? 정교한 읽기는 쉽게 말해서 책을 뜯어먹는 거라고 생각함. 문장 하나하나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의미를 찾아내고, 저자의 말에 의심을 가지며, 그 너머까지 생각하여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읽기가 정교한 읽기임. 

정교한 읽기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기억이 오래 지속된다는 데 있음. 고생하며 읽은 책은 몇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음. 분서갱유 이후 공자의 저작을 복원한 게 누구였음? 공자의 사상이 적힌 책을 달달 외우다시피 공부한 학자들임. 

정교한 읽기의 단점은 책 한 권을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거임.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한 권을 계속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슴? 안 그럼?


책을 읽고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게 읽을 책과 정교하게 읽을 책을 골라내는 능력에 있음. 단순하게 읽으면 안 좋은 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을 거임. 그러나 아무리 단순하게 읽어도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 있음. 어떠한 책을 단순하게 읽은 후, 비슷한 내용의 책을 읽다 보면 기억나는 게 있잖슴? 이게 쌓이다 보면 의식적으로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지속되는 지식이 남는다고 생각함.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역사, 과학, 경제 관련 책들은 단순하게 그리고 많이 읽는 편임. 읽다 보면 겹치는 내용이 많이 나오고, 전에 읽었던 내용을 또 읽으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게 되더라. 

정교하게 읽는 책은 사회학, 철학, 같은 부류임. 이런 책들은 읽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야지만 기본적인 골자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유독 정교하게 읽는 듯함. 

나는 정교하게 읽을 책과 단순하게 읽을 책을 못 정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고전을 정교하게 읽는 것을 추천함. 고전이 괜히 오랜 시간 동안 칭송받은 게 아님. 고전은 작가가 정한 주제와는 별개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함. 고전을 정교하게 읽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만의 해석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임. 이러한 과정에서 탐구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함.


첨언하자면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용기록이라고 생각함. 책에서 얻은 지식이 지식만으로 남으면 아무 쓸모 없음. 만약 생물과학 책을 읽고 "농게는 현존하는 동물 중에서 가장 큰 무기를 지녔지만, 그 무기가 억제력으로 작용하여 싸움에서 쓸 일은 거의 없다"는 지식을 얻었다고 치셈. 이 지식은 써 먹을 데가 없음. 친구한테 가서 "농게 집게발이 존나 쎈데 쓸 일이 없대. 다른 놈들이 개쫄아서 싸움을 안 걸거든." 이러면 미친 놈 취급을 받지 라이트노벨처럼 오오 대단해. 아나타 천재데스요. 이 지랄하지는 않을 거 아님? 책을 읽고 무언가를 남기려면 지식을 가공해야 한다고 생각함. 위에서 말한 농게 같은 경우는 "강력한 무기는 억제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식으로 바꿔서 머릿속에 저장해 놓자는 거임. 작가는 소재를 제공할 뿐임. 그 소재를 활용하는 건 독자에게 달렸음.

기록 같은 경우는 단순하게 읽었을 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함. 나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단순하게 읽은 책은 자고 일어나면 책 내용의 대부분을 까먹음.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책을 읽은 다음 날에 독후감을 씀.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책의 내용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기억이 생성되기 때문임. 단순하게 읽은 책은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기 때문에 기록으로 잡아 놓을 필요가 있다고 봄. 


쨌든 독붕이의 헛소리 들어주느라 수고했음 세 줄로 요약하자면


1. 책을 읽는 건 단순하게 읽는 것과 정교하게 읽는 것이 있음.

2. 책에서 무언가를 남기려면 단순하게 읽을 책과 정교하게 읽을 책을 구분해야 함.

3.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용과 기록임. 실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게 지식을 적용하고, 머리에서 떠나더라도 언제든 붙잡아 올 수 있도록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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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풀 개꿀잼임 2019년도에 읽은 책 중 원탑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