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갤에 간간이 지젝-피터슨 토론이 언급되길래, 국내산 논쟁을 가져와 봤음.

ㅡ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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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인해 1950년대 문학은 우파 진영의 독무대였음. 그런데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며 문학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음. 이는 실존주의를 받아들이는 방식의 변화로도 설명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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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가주망!"

50년대에는 실존주의가 고립된 개체의 실존 문제를 다루는 개인적인 형태였다면, 60년대는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을 필두로 하여 '사회 참여의 문제'가 대두된 것임.

이런 배경 속에서 두 차례의 순수참여 논쟁이 일어났음. 물론 그전에도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대립에 관한 논쟁은 있었음. 20년대 카프 문학으로 한바탕 논란이 있었고, 30년대 후반에 유진오-김동리가 "순수문학"이란 단어를 두고 논쟁을 펼치기도 했음.

첫번째 순수참여 논쟁은 1963, 1964년에 김우종/김병걸과 이형기 사이에서 벌어졌음.

김우종 : 순수문학은 현실의 삶과 민중의 삶을 외면했다.
김병걸 : 아아, 이것은 "앙가주망"이란 것이다. (앙드레 말로, 사르트르를 국내에 소개하고 참여문학의 의미 강조)

이런 주장에 반대하여,

이형기 : 뒷북 ㄴㄴ 이미 해방기에 끝난 순수참여 논쟁을 아직까지도 끌고 있네 ㅉㅉ

이형기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으로 참여문학은 힘을 얻었고, 김현, 이호철, 홍사중 등을 통해 더욱 다양한 담론으로 이어졌음.


ㅡ논쟁
1968년, 김수영과 이어령의 논쟁은 이어령이 쓴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에서 시작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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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네 수준은 그거밖에 안 돼? 문화계는 있지도 않은 정치 에비, 상업주의 에비, 대중의 에비를 설정한다."

이어령은 문화인의 자율성과 순수성의 상실을 한탄했고, 문학인들이 쓸데없이 겁만 먹고 있다고 비판했음.

여기서 에비는 무엇인가. 엄마는 애기가 울고 있을 때, "뚝! 안 그럼 에비가 찾아온다!" 하는 말로 애 울음을 멈추곤 함. 엄마도 애기도 '에비'가 누군지 모르는데, 애기는 '에비'란 소리만 들으면 겁을 먹는 거임. 이어령이 보기엔 당대 문학인들이 있지도 않은 '권력의 탄압'에 겁을 먹고 예술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거임. '에비'는 유아들에게 사용하는 언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문학인들을 겁먹은 애기 취급했다고 볼 수 있을 듯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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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애비가 없어? 패드립 신고함 ㅅㄱ"

김수영은 조선일보에 어령의 주장을 반박하는 '지식인의 사회참여'라는 글을 기고했음. 정치권력의 탄압이 여전히 문학계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에비는 실제로 존재한다'라는 것이 그 글의 요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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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글은 단순히 이어령을 반박했을 뿐 아니라, 1년 전에 있었던 동백림 사건에 관한 코멘트이기도 했음. 다들 역사시간에 한번쯤 들어봤겠지만, 동백림 사건은 서유럽에 거주하던 한국인 194명을 동베를린 북한 대사관에서 활동한 간첩들이라 발표한 사건이었음. 천상병 시인이 이때 받은 고문 때문에 평생을 시달렸던 일화는 국어 교과서에 나와 있기도 함 ㅇㅇ.
이 사건이 있고나서, 한 논평가가 "문화계인들이 다 간첩인 것는 문화계 자체의 문제다"라며 그들을 비판하는 사설을 발표했는데, 김수영은 그 사설에 분노하며 글을 썼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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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압 없던 때도 좋은 작품 못 만들어냈죠?"

이어령은 '누가 그 종을 울리는가', '서랍 속에든 불온시를 분석한다'라는 두 개의 글을 기고하며, 김수영의 주장을 반박했음.

일단 첫번째로, 한국 역사에서 정치 탄압이 작용하지 못했던 8.15 직후 2, 3년과 4.19 이후 1년동안에 문학은 그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 했다는 것임. 이어령은 이렇게 표현했음. "삐라 같은 어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이어령의 논지는 대중들의 맹목성을 경계하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음. (사회참여론자들이 대중 눈치를 보며 썼기 때문에 문학의 질이 떨어졌다고 봄.)

그리고 두번째, 문학인들은 독재가 끝나고서 그런 말을 한다. 지금의 참여시는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추구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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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적이란 말을 잘못 이해한것 같은데..."

김수영은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인 자유'라는 글을 기고하며, 참여문학은 곧 전위문학.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침. 자신이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권력에 대항하는 '불온성'을 높게 평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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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추종자들은 '문학은 진보 편에 서야 한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령은 문학이 권력이나 정치 이념의 시녀가 돼서는 안 된다며, 김수영의 전위문학을 '진보'라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묶어서 비판했음.

두 사람의 논쟁은 이쯤에서 끝났다고 볼 수 있음. 누가 이기고 졌다기 보다는, 참여문학을 문학의 본질적인 영역으로 보느냐,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보느냐에 대한 시선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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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온 몸으로, 바로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거야!."

김수영은 <온몸시론>에서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음. 

머리도, 심장도 아닌, 몸 전체를 밀어붙여 문학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참 그다운 문장이었다고 느껴짐.

마광수도 "문학의 가치는 저항에 있다" 말했고, 격동의 한국 근대에서 참여문학이 쌓아올린 가치를 우리는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음. 그와 동시에, 그것이 '획일화된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이 논쟁 당시 이어령이 35세, 김수영이 48세였음. 요즘은 40대 중반에도 젊작상을 받는 시대지만, 이때만 해도 30, 40대가 한 장르를 대표하여 논의할 수 있었다는 점이 신기했음. 현대 한국문학도 이처럼 치열한 논의와 토론을 거쳐 더 큰 문학으로 성장해 나가길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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