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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청준 + '당신들의 천국' 주인공 '조원장'의 모델이 된 조창원 원장의 모습
우선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보다 많은 독붕이들이 ‘당신들의 천국’을 읽게 되는 것.
고로, 너님들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느낄 즐거움과 쾌감을 헤칠 수 있는 줄거리의 주요 부분, 디테일은 일부러 생략하겠음.
스포 없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는 뜻.
소록도 안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건립되었던 국립 요양병원의 이야기임. 실화에 기초함.
실화 바탕의 많은 소설은 실제 풍경을 찍은 대다수의 사진이나 그림처럼 원본의 열등한 복제가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음. 하지만 본 작품은 그런 참상을 면함.
더 가치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단 뜻만이 아니라, 실화 속에 내재된 혹은 사실 실제에는 없었던 더 심원하고 다양한 의미들을 발견하고 부여하는데 성공했다는 뜻.
하지만 그렇다고 소록도나 모티브가 된 사건들을 구글링 하며 책을 읽길 권하진 않음. 중요한 건 소설 속 ‘진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싶은 스케일 크고 참혹한 일들은 모두 사실이라는 것. 소설 속 묘사는 적어도 잔혹함에 비하면 실제보다 덜 하다는 정도의 사전지식임.
읽은 후 구글링 해보삼. 요게 또 꿀잼이고 독서를 완성시키는 경험이 될 거임.
1916년 건립직후 (구) 소록도 자혜병원 (현) 국립 소록도 병원의 모습
내가 생각하는 본 작의 첫 번째 의미는 자연스럽게 잊혀 질 뻔한 현대사 속 비극을 복원했다는 것임.
단적으로 (사실 이것도 소설 속 자료는 아니고, 읽은 후 구글링을 통해 알아냄), 1916년 일제에 의해 나환자 수용시설이 만들어 진 후 이곳에선 최소 수 천 건이 넘는 단종 및 불임 시술이 있었음. 때가 때였고 장소가 장소였던 만큼 마취를 하고 정관 정도를 소프트하게 묶는 수술을 생각하면 아니 됨. 그보다 훨씬 아날로그하고 야만적인, 너님들이 상상한 바로 그 방법으로 남녀 나환자들을 불임자로 만듦. 더 슬픈 건 1945년 광복 후에도 이 거지같은 관행은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것.
한센병은 자녀에게 유전되는 질병이 아닌데도! 심지어 그 사실이 의학계에 널리 알려진 1980년 이후에도!!
그리고 여기서 진짜 더 빡치는 팩트 하나.
1945년, 광복된 소록도에서, 환자들이 보다 민주적인 병원 운영을 요구하자 직원들이 회의를 하자며 90명의 환자들을 한 곳에 모든 뒤... 오마이걸 맙소사... 84명을 죽이고 ‘암매장’함. 이것도 그냥 사실임.
암튼 군사독재 시절이 끝난 뒤, 한센인들은 단종 수술을 포함한 그간의 비인권적 사건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보상을 줄곧 요구했지만, 2017년 2월이 되어서야 최초의 승소판결 및 보상이 이뤄짐.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공식 단종 및 불임 수술의 피해자만 9000명 이상이었음. 심지어 병원 원장이나 직원의 말에 불복종하면, 재판도 없이 섬 내의 감옥에 가둬두었다가 ‘감옥에서 나가는 조건으로’ 단종 수술을 강요한 관행도 있었다함.
그나마 인간적인 인술을 펼쳤다는 2대 원장 일본인 '하나이'를 위해 소록도 한센인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 만든 동상
하지만 4대 원장 스오 마사스에는 신체 말엽이 썩어가는 환자들에게 일본천황에게 인정받을만한 시설을 만드는 공사를 수 년간 강제할만큼 미친 놈이었음..
6.25, 5.18, 4.3 모두 현대사의 비극임. 하지만 내가 소록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과정에서 정말 무서웠고 이 비극은 한층 끔찍하다고 생각했던 건,
소록도의 참상은 위의 전쟁, 혹은 이에 준하는 예외적 상황에서 지역과 국민을 휩쓴 일회적 재앙이 아니었다는 점임. 한센인들에게 저 비극은 말 그대로의 평범한 현실 아니었겠음? 짧게 잡아도 100년 이상, 섬을 지배해온 상식의 수준이 저 따위였던 거임.
‘당신들의 천국’의 첫 번째 가치는, 이 혐오와 배제의 거리감과 죄책감의 가속도로 말끔하게 지워질 뻔한 참혹한 현실을 문학의 힘으로 붙들어 매고 기록했다는 데 있음.
두 번째 의미는 소설 속 사건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그 시기, 혹은 소설 저작 시기의 한국 정치의 문제를 은유적이지만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거임.
소설이 발표된 건 1976년. 우리의 위대한 박각하 마사오님께서 생존해 계시던 시대임. 만약 작가가 보다 직접적이며 촌스러운 방식으로 이 독재정권을 겨냥하고 비판했다면 우린 이 작품은 물론, 이청준 작가의 후기작을 만나지 못했을 거임. 그럼 이 책이 마냥 좌빨들마냥 박정희 개객끼를 외치고 있는 소설이냐?
절대 아님. 독서의 재미를 위해 약간의 힌트만 주자면, 소설은 독재자는 물론, 독재자를 필요로 하는, 혹은 독재 외의 지배방식에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피지배인들의 문제도 다루고 있음.
세 번째 의미는 제법 그럴듯한 기독교 호교론과 인간조건 및 구원의 방법론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다는 것.
‘벌레 이야기’, ‘낮은 데로 임하소서’ 같은 작품에서 보듯 이청준은 C. S. 루이스처럼 이성적이고 그럴듯한 논리와 작품으로 기독교 호교론을 설파하는 작가임.
순전한(X) 순진한(O) 루이스의 기독교 호교론
하지만 루이스의 호교론이 그의 대표작 독자층처럼 여러모로 어린 이들을 위한 말장난이고 동화 같은 것이라면, 이청준의 호교론은 마음만은 적그리스도에 가까운 기성 기독교 혐오론자인 나조차도 일정 부분 수긍하게 만드는 것이었음.
책을 중후반부까지 읽다보면, 왜 기독교의 메시아인 예수가, ‘처녀잉태’라는 조악한 방식으로 지상에 내려왔어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됨. 예수가 다가 아님. 이 작품 속에는 모세, 혹은 도마, 혹은 구약성서의 수많은 예언자 등으로 치환해 생각할 수 있는 인물들이 꽤 많이 등장함.
나아가 왜 인간은 반드시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인지, 그런데 왜 구원은 이토록 힘든 것인지, 그렇다면 가능한 구원의 방법론은 무엇일지 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지평을 제공함.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움. 읽고 2, 3번째 의미에 대한 너님들의 생각을 알려준다면 더 많이 고마울 듯.
훌륭한 감상입니다. 저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지도 몰랐네요. 나중에 이청준 책 살때 참고하겠습니다
이것도 함 찍먹해봐야지. 여유 생기면 국문학 도장깨기 들어간다
독재자를 필요로 하는 피지배인들?? 내가 까먹은건가... 그런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소설 속 피지배인들에 관한 내용이 인상깊었던 건 동감함
다만 정과리 작품해설에서 이 소설은 단순 알레고리가 아니라 권력관계, 지배-피지배 관계에 얽힌 다양한 문제들을 다룬다고 했는데, 나도 공감이 많이 갔던 듯 ㅎㅎ 당신들의 천국은 지배의 문제, 이해관계의 문제에 관한 성찰이 1부->2부->3부로 느릿느릿 진행되는 거 같아 음... 2번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하면 좋겠다구 ㅎ
우선 난 의식적으로 작품 뒤의 평론은 전혀 안읽어. 기성 문단에서 당신들의 천국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음. 그만큼 주관적이라 자세히 말하긴 애매하지만, 한 두 가지만 예를 들자면 조원장 부임했을 때의 절대적인 침묵과 무기력의 분위기 기억하지? 아예 조원장의 입을 빌어 '이 섬은 죽은 자들만 말을 한다'라고 그런 분위기를 꾸짖기도 했었고. 난 이게 당대의 독재에 대해 굴종하고 침묵하는 대중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생각했었음.
상처받아 침묵으로 내몰린 대중들에게 굴종이란 딱지를 붙힌다면 폭력적인 비판이 되지 않을까? 저자의 의도와는 충돌할거 같은데... 환자들에겐 침묵으로 내몰릴수밖에 없는 그런 사정과 이해관계가 있는거고. 각자 처지와 이해관계가 있고 이런 처지의 문제가 권렧,지배관계에 필연적으로 얽힘을 보여주는 장치라거 생각해
흠, 재밌네. 나도 초반부를 읽을 땐 나환자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한량없는 연민과 애정이라고만 생각했음. 근데 황장로의 소름끼치는 과거사(이건 사실 '문둥이들' 모두의 과거사 혹은 기독교 식으론 원죄라고 할 수 있겠지. 동시에 그들을 배제한 비환자들의 죄이기도 하고), 동상(원장들의 본말이 전도된 명예욕의 상징인 동시에 떠받드는 나환자들에 힘입어 우상의 지위에 오른 원장들, 출애굽기의 금송아지?), 간척사업이 난항을 겪을 때 보이는 서로를 혹은 조원장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시도(예수 알레고리 혹은 동상완공을 위한 희생을 정당화하고 사실 갈망하는 대중) 등을 보면 이청준 아재는 문둥이들을 마냥 수동적이고 억울하기만한 피해자로 보고 있진 않는 것 같아.